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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韓 영화, ‘러브 스토리’ 공략 필요할 때

입력 : 2023-10-16 08:00:00 수정 : 2023-10-15 11: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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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일’ 스틸컷

 

3일 개봉한 한국영화 ‘30일’이 흥행 순항 중이다. 개봉 일부터 하루도 일간 흥행 1위를 놓지 않으며 14일 현재까지 누적 관객 109만2756명을 기록 중. 그렇게 손익분기점인 160만 관객 돌파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어찌됐든 ‘30일’의 기대 이상 성공은 지난 추석 개봉한 한국영화 빅3, ‘천박사와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과 ‘1947 보스톤’, 그리고 ‘거미집’까지 모두 손익분기점 도달이 사실상 요원해진 상황에서 단비 같은 소식이 맞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30일’은 로맨틱 코미디란 점이다. ‘중급 영화’ 대표 장르이자 100억 원 이하 예산으로 제작돼 손익분기점이 200만 관객 이하로 잡히는 장르. 그리고 지금은 ‘그런’ 영화들이 극장용 장편영화로선 매력이 휘발돼가고 있다 여겨지던 시점이다. 이제 ‘그런’ 영화들, 예컨대 호러영화나 로맨스영화 등 ‘중급 영화’들은 OTT에서나 기능할 뿐 극장선 이미 인지도와 팬덤이 성립된 IP 기반에 ‘보여줄 것’ 많은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팬덤형+체험형’ 흥행구도만 살아남으리란 예상 말이다.

 

그런데 최소 올해만 놓고 보면 예외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당장 지난여름만 해도 그렇다. 비록 손익분기점 돌파엔 실패했지만,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 ‘달짝지근해 7510’가 138만5078명까지 관객을 끌어 모으는 선전을 보인 바 있다. 어째서 이런 예외들이 생겨나는 걸까. 큰 차원에선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s)’이란 명제로 돌아간다. 어찌됐든 모든 내러티브 미디어의 상업적 근간은 인간 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있고, 그중에서도 남녀 간 연애는 수백 년 전부터 그 핵심 축으로 기능해왔단 대전제 부분이다.

 

아무리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듯 보여도 결국은 저 진부한 사랑 얘기로 돌아가게 돼있고, 어떤 환경이나 조건 하에서도 대중은 늘 사랑 얘기에 목말라 있단 것. 문제는 그 사랑 얘기가 소화될 미디어 차원이지만, 이렇듯 작은 규모로 만들어낼 수 있는 로맨스영화는 사실 OTT 등장 이전부터도 계속 위협받아온 바 있다. 그리고 늘 한계를 극복해왔다.

 

예컨대 TV가 막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한 1970~80년대 한국영화계에선 저 사랑 얘기를 TV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성(性) 묘사 수위를 높이는 출구를 택했다. ‘에로영화’의 시작이다. 1970년대 ‘영자의 전성시대’ 등 호스티스 영화부터 1988년 ‘매춘’ 등까지 죽 이어지던 흥행공식.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젊은 층 풍속도를 TV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포착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개발돼 시대를 풍미했고, 2010년대 들어선 또 다른 방법론으로 승부 중이다.

 

이른바 ‘리얼연애’ 노선이다. 2012년 ‘건축학개론’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으로 흥행 가능성이 열린 이래 2018년 ‘너의 결혼식’ 등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노선. TV 트렌디 드라마 포맷에선 좀처럼 택하기 힘든 실제 연애와 결혼의 다분히 현실적인 갈등과 충돌, 그리고 때론 남녀가 결국 이어지지 못하는 비터스위트 엔딩까지 과감히 택해 점차 연애 자체에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젊은 층 공감을 얻어냈다. 큰 차원에선, 비록 부부 동시 기억상실이란 슬랩스틱 설정을 취하긴 했어도, 이혼이란 현실적 명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30일’ 역시 같은 노선에서 그 흥행을 해석해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노선 역시 TV는 곤란해도 OTT라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이 지점부턴, 대중은 무조건 휘황찬란한 눈요기만을 위해 극장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바깥나들이 과정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것이란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 ‘좋은 시간’ 범주에 ‘백 투 베이직’ 요소가 자리 잡는다.

 

예컨대 1970년 미국영화 ‘러브스토리’ 대성공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러브스토리’는 사실 그 당시로서도 여러모로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진 최루성 연애담이다. 당시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 무드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졸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 라이더’ ‘미드나잇 카우보이’ 등 새로운 세대 가치관을 담은 수정주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 제작총수를 맡고 있던 제작자 로버트 에반스 눈엔 세태가 다르게 비쳐졌다.

 

따지고 보면 모두 겉포장만 도발적 어젠다들로 덧씌워놨을 뿐 본질은 계급을 뛰어넘는 낭만적 연애, 기성세대 가치관에 무조건반사적으로 반발하는 신세대 성장통 등 진부한 테마들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더란 것. 그렇게 명문가 WASP 대학생이 서민층 이탈리아계 소녀와 집안 반대 끝에 맺어지는 고색창연한 연애담이 밀어붙여졌고, ‘러브스토리’는 1970년 미국서만 7000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당시 미국 인구가 2억500만 명 선이었으니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관람한 셈이다. 성(性) 묘사도 딱히 없고 엄밀히 TV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낡은 연애담에 그렇게들 입장료를 지불하며 몰려갔다.

 

그러고 보면 최근 출간된 미국 음악평론가 척 클로스터만의 서적 ‘90년대: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에도 그와 유사한 상황을 짚는 대목이 등장한다. 흔히 ‘펄프 픽션’과 너바나로 대표되는 1990년대의 암울하고 냉소적인 X세대 트렌드 속에서도 본질적으론 낡은 연애담에 불과한 ‘타이타닉’이 어마어마한 흥행을 거둔 사례에 대해서다. 이에 대해 클로스터만은 “‘타이타닉’이라는 대작의 특성은 90년대에 광범위하게 퍼진 고정관념과 모순된다”면서도 “그렇다고 이러한 고정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언제든 무시될 수 있고, 개인의 야망에 따라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 대중의 ‘낡은’ 욕망들은 사실상 상수다. 빽빽한 시대 공기를 비집고 그를 효과적으로 끌어낼 타이밍과 마케팅 문제만 존재할 뿐이다. 현재 ‘바이러스’ ‘원더랜드’ ‘말할 수 없는 비밀’ 등 수 년 전 촬영이 끝난 로맨스영화들 극장 개봉이 밀려있거나 아예 OTT로 출구를 잡는 분위기다. 흥행 가능성에 대한 의문 탓이다. 그런데 그처럼 주저하는 사이 빈 공간은 일본과 대만 로맨스영화들이 예상 밖 성적을 내며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올 초 일본 실사영화로 21년 만에 국내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등 말이다. 공간은 늘 존재한다. 용기를 갖고 그 공간의 공략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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