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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談한 만남] 재일동포 차별 딛고 ‘럭비 전설’ 우뚝 선 오영길 감독… 그의 ‘트라이’는 끝나지 않았다

입력 : 2023-08-26 07:00:00 수정 : 2023-08-25 15: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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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의 오영길 감독. 사진=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 제공

 

‘트라이’는 럭비의 꽃이다. 골라인 바깥의 상대방 ‘인골’ 지역에 볼을 터치하는 득점 방식을 일컫는 용어로, 성공하면 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게 된다. 단어 자체가 품은 ‘시도’라는 뜻처럼, 숱한 실패에도 도전을 반복하는 럭비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기도 하다.

 

재일교포로 구성된 오사카조선고급학교(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일본 고교럭비 전국대회 ‘하나조노’ 4강 신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의 주인공, 오영길(55) 감독의 럭비 인생도 매 순간의 ‘트라이’로 이뤄져 있다. 차별을 견디며 일본에 머무르던 과거에도, 럭비 불모지인 한국에서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지금도, 그는 ‘트라이’를 멈추지 않는다.

 

◆누나 손 잡은 ‘럭비 소년’의 꿈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일본 내 럭비 열기에 심취해 있던 친누나의 손을 잡고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럭비계의 고시엔, ‘하나조노’ 결승전을 두 눈에 담았다. 그렇게 럭비와 연을 맺은 ‘소년’ 오영길은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후 재일교포 학교인 오사카조고의 럭비부에 입부하며 본격적인 그의 럭비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럭비는 단체 종목 중에서도 15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한 팀이 된다. 그럼에도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덩치가 크든 작든, 달리기가 빠르든 느리든 그 개인들이 모두 팀에 필요한 존재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동료의 단점을 메워주는 협동 정신이 럭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그의 학창 시절에 일본 내에서 럭비가 주목받은 이유도 결이 같았다. 당시 현지 매스컴은 소위 ‘문제아’로 불리던 소년들이 럭비를 통해 결여된 사회성을 회복하고 바른 인성을 갖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 오 감독도 그 점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멋진 스포츠라 생각했다. 럭비 정신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모든 선수들이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며 웃었다.

 

오영길 감독이 대한럭비협회 회관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며 미소짓고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민족의 한을 푼 전설의 ‘감독’으로

 

럭비에 대한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1988년 오사카조고 교사로 발령되자마자 럭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선수 각자의 역할을 찾고 잠재력을 끌어올려 ‘원팀’이 되도록 조율하는 지도자야말로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며 “앞선 럭비 선배들이 그랬듯, 후배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결심의 계기를 설명했다.

 

그렇게 럭비부 코치직을 시작한 그는 1994년, 일본 사회의 재일교포 학교를 향한 차별을 뚫어내고 오사카조고의 첫 고교 럭비 대회 공식전 출전 이정표를 세웠다. 그는 “당시 출전을 위해 재일동포는 물론 일본인 교사, 변호사 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줬다. 서명 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적극적인 움직임이 생겨난 끝에 일본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럭비부 감독을 역임했다. 2015년까지 팀을 이끌며 무려 7번이나 팀을 ‘하나조노’ 오사카 대표에 올려뒀다. 2009년과 2010년에는 2년 연속 대회 4강 진출이라는 대업까지 달성하며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떠올랐다.

 

오 감독은 “평소 선수들에게 ‘재일동포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고 동기부여를 해줬다. 우리 학교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께서 세운 재일동포학교이며 우리가 그곳의 럭비부로서 유례없는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고 밝혔다. 

 

그의 가르침 아래 첫 4강 신화를 쓴 2009년은 특별했다. 그는 “하나조노 대회는 8강전부터 의미가 남다르다. 보통 새해 1월에 열린다. 하나조노 경기장이 약 3만 명의 관중으로 가득 찬다. 그때 선수들에게 ‘재일동포들에게 승리라는 새해 선물을 드리자’고 독려했던 기억이 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보란 듯이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 낸 그는 “세간에서는 우리의 4강 진출을 기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선수들에게 ‘당연한 결과’라 말했다. 그게 걸맞은 훈련을 해온 만큼 그럴 자격이 충분한 아이들이었다”며 “그 덕에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재일동포 학교의 현실을 일본 사회가 낱낱이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그 고난에 공감하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곧바로 모든 핍박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도입한 고교 전면 무상화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하기도 했고,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을 중단·감액시키는 등 차별 대우를 지속했다. 민족의 뿌리를 지키고자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고 자체 제작된 한국어 교과서도 사용하는 조선학교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오 감독은 “우리를 향한 나쁜 말들을 들을 때, 선수들에게 말했던 게 있다. ‘럭비에서는 보복이 가장 심한 반칙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응수하면 똑같이 인품이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약한 자가 말로 상대를 공격하는 법이다. 우리는 럭비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강조했다”는 자신의 소신을 역설했다.

 

오영길 감독(왼쪽)이 선수단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 제공

 

◆고국에서 꿈꾸는 또 한 번의 ‘트라이’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제주도민 부모님 아래 태어난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지난 3월 창단한 실업팀 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한국에 럭비 씨앗을 뿌리고자 한다.

 

약 35년 전, 일본에서 선수이자 라이벌로 만났던 재일교포 3세 출신, 대한럭비협회 최윤 회장과의 돈독한 관계가 바탕이 됐다. 최 회장은 제24대 협회장으로 부임한 2021년, 당시 일본 NTT 도쿄모 실업팀에서 리쿠르터로 일하던 오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한 형님의 부름에 미련 없이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협회 이사직, 한국 럭비 국가대표 코치직을 병행하며 역량을 쏟았다.

 

이후 스포츠 사랑이 남다른 최 회장의 열정으로 빚어진 실업팀 읏맨 럭비단으로 인연이 이어졌다. 오 감독은 구단주인 OK금융그룹 최 회장의 제안에 또 한 번 망설임 없이 손을 잡았고 반년 남짓 팀을 이끄는 중이다. 오 감독과 선수들은 오전에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회사로 돌아와 업무를 보며 럭비와 일,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중이다.

 

그는 “회사 업무를 보면서도 럭비 훈련에 성실히 임해준 선수들, 그리고 선수들이 일과 럭비를 병행할 수 있게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그룹과 최윤 회장님께 감사드린다”며 밝은 미소를 띠었다.

 

전폭적인 도움 속에 읏맨 럭비단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창단 후 곧바로 참여했던 2023 코리아 슈퍼 럭비리그 1차 대회에서는 전패에 그쳤지만, 2차 대회에서 고려대를 상대로 감격스러운 구단 첫 승리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 감독은 “첫 대회는 합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지만 2차 대회는 여러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선수들의 이해도와 훈련 효율성이 함께 올라가면서 시너지를 일으켰다. 코칭 스태프들 또한 선수 개개인에 맞춘 몸 관리에 힘쓰면서 ‘럭비’에 필요한 체력을 증진 시키는 데 집중했다. 활발한 소통까지 얹어지면서 조금씩 팀에 활기가 생기는 중”이라고 웃었다.

 

오영길 감독(왼쪽)이 선수단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OK금융그룹 읏맨 럭비단 제공

 

역설적이지만 ‘감독 같지 않은 감독’을 꿈꾼다. 그는 “개인적으로 감독이란 호칭을 싫어한다. 선수와 나 사이에 상하 관계가 너무 굳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권위를 덜어내고 선수들과 친근하게 지내고 싶다. 엄격한 지도자보다는 인생 선배가 되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읏맨 럭비단은 다가올 10월에 있을 전국체전에 맞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 감독 또한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곧 있을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 올림픽도 그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다. 

 

그는 “우리 한국인은 나라를 위해 불태우는 정신력이 남다르다.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본다. 나도 언제든지 대표팀을 위해 재능 기부를 할 준비가 돼 있다”며 “꼭 시상식에 한국 국기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럭비를 향한 관심과 사랑도 늘 수 있지 않나. 선수들 힘들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의 모든 바람은 결국 ‘비인지 스포츠’ 럭비의 성장으로 귀결된다. 그는 “오사카조고 시절이 나에게 인생 첫 번째 ‘60만 번의 트라이’였다면, 읏맨 럭비단 감독으로서 한국 사회의 럭비 관심도를 높이고 선수들을 향한 존중과 선호를 만들고 싶은 지금은 내 인생의 두 번째 ‘60만 번의 트라이’다. 앞으로도 한국 럭비와 재일교포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힘찬 메시지를 전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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