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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쥬리풀 데이즈’로 보는 해외 K팝 전략

입력 : 2020-10-05 09:00:00 수정 : 2020-10-05 08: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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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개월 넘도록 해외진출에 제동이 걸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K팝 업계는 흥미로운 해외진출 전략들을 종종 선보이고 있다. 울림엔터테인먼트 걸그룹 로켓펀치 멤버 타카하시 쥬리의 유튜브 콘텐츠 ‘쥬리풀 데이즈’도 그중 하나다.

 

 지난 8월16일 1화를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공개되는 ‘쥬리풀 데이즈’는 이제 K팝 아이돌이 된 타카하시 쥬리가 일본 팬들에게 K팝 아이돌 세계를 소개하는 콘텐츠다. 처음엔 회당 8분 정도로 시작했지만, 반응이 좋아 10월3일 기준 7화까지 진행된 지금은 23~24분 분량으로 늘어나있다. 소재는 활동기 K팝 아이돌의 하루일정, K팝 아이돌식 메이크업, K팝 아이돌의 다이어트 등 해외 K팝 팬들, 특히 1020 여성층 궁금증을 풀어주는 얘기들로 망라돼있다. 전체가 일본어로 진행되며, 그 아래 한국어 등 자막이 달리는 형식.

 

 ‘쥬리풀 데이즈’는 실제로 일본 K팝 팬들 사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단 유튜브 조회수부터가 그렇다. 로켓펀치 자체콘텐츠 기본포맷 ‘ID: 로켓펀치’ 조회수가 보통 4~6만 뷰 나오는 반면, ‘쥬리풀 데이즈’는 30만 뷰 이상 회차만 벌써 3개다. 딱히 로켓펀치 팬이 아니었던 일본 K팝 팬들까지 보고 있단 얘기다. 그러면서 ‘ID: 로켓펀치’ 등 기존 콘텐츠 조회수도 동반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 K팝 팬들 소통 ‘본진’ 트위터와 이런저런 일본 K팝 게시판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타깃으로 삼은 K팝 주 소비층 1020 여성층 사이 K팝 메이크업과 다이어트 관련 콘텐츠가 화제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쥬리풀 데이즈’ 기획을 직접 건의해 성사시킨 멤버, 타카하시 쥬리 입장에 비춰볼 때 상당히 흥미로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타카하시 쥬리는 많이들 알다시피 일본 걸그룹 AKB48 출신이다. 2011년 AKB48 연구생으로 시작, 이듬해 정식멤버로 승격한 후 장장 7년에 걸쳐 인기멤버로 활약했던 베테랑이다. 그러다 2018년 M.net ‘프로듀스 48’ 계기로 K팝 세계에 입문, 여세를 몰아 이듬해 3월 AKB48 졸업과 울림엔터테인먼트 이적을 발표해 48그룹 팬들에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로켓펀치로 데뷔하게 된 순서.

 

 사실상 일본 아이돌산업, 그중에서도 걸그룹 사정에 대해선 누구보다 그 생리를 잘 알고 있을 ‘현장’ 멤버란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AKB48 시절에도 48그룹 차기 총감독(리더) 최유력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다. 이처럼 실제 일본시장 베테랑 입장에서 떠올린 일본 아이돌 팬 공략법과 그 타깃설정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일본 아이돌 팬 특유의 감수성에 대해서다. 이는 일본서도 방영된 ‘프로듀스 48’과 ‘니지 프로젝트’ 성공담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딱 그런 요소’들을 갖춘 프로그램들이었기에 일본서 성공할 수 있었다. 심지어 ‘프로듀스 48’이 종료되고 아이즈원이 데뷔했을 당시도 ‘프로듀스 48’ 일본시청자들 사이에선 ‘데뷔곡 연습과정도 함께 공개해줬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나왔을 정도다. 소위 ‘백 스토리’를 통해 멤버들의 사실적 캐릭터성을 즐기고 싶다는 것. 한국선 그런 식 공개가 소위 ‘팬덤전쟁’ 차원 ‘꼬투리’가 될 수 있단 점에서 꺼려하지만, 일본은 그와는 또 정서가 다르단 얘기다. 향후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된 니쥬 등도 참고해야할 부분이다.

 

 또 다른 점은, 아무리 AKB48 인기멤버 출신이 가입된 팀이라 해도, 그 시절 그 팬들을 그대로 ‘당겨올(?)’ 생각은 접는 게 좋단 판단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누울 자리보고 뻗는다” 등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K팝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문화에 적극적인 1020 여성층 중심 동세대 남성층 정도까지가 주 타깃이어야지, 48그룹 등에 반응하던 중장년 남성층까지 끌어들이는 건 실제적으로 무리란 판단. 아무리 넷플릭스 등을 통해 한국드라마가 중장년 남성층에까지 닿은 시점이라 해도, 아이돌을 즐기는 팬층은 그보다 훨씬 완강하고 고집 센 집단이다. 이런저런 편견들도 꽤나 심하다. 결국 K팝은 일본서 1020 문화 일부로서 과연 어디까지 파이를 차지하느냐 승부로 집중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처럼 크게는 위 두 가지 측면이 ‘쥬리풀 데이즈’가 제시하는 대(對)일본 K팝 전략이라 볼 만하다. 그리고 ‘쥬리풀 데이즈’는, 소재 한계 탓에 상시 고정기획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최소 ‘지금까진’ 충분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껏 해외멤버들을 꾸준히 구비해놓던 K팝 업계에서 왜 이런 콘텐츠가 진작 나오지 않았는지 의아해질 정도다.

 

 논의를 넓혀보자. 어찌됐건 일본은 여전히 K팝 해외 총수익 60% 이상을 차지하는 캐시카우 시장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심지어 한한령(限韓令)이 풀린단 가정 하 중국시장과 비교해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최대 수익처 공연시장 차원에서 중국처럼 미니멈개런티가 아니라 인센티브 계약으로 막대한 수익을 보장해준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기반으로 K팝이 미국시장서 탄탄히 자리 잡기 전까지 최대 해외승부처는 여전히 일본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K팝은 ‘한국서 탑급이 돼야 해외서도 환영 받는다’는 기존공식이 깨져가는 와중이기도 하다. 오히려 해외열기를 통해 국내위상이 재편되는 팀들도 적잖이 볼 수 있다. 미국 등 서구 인기로 위상이 새로 씌어지는 에이티즈와 이달의소녀, 중국과 남미 등지 인기가 팀 위상을 견인하는 에버글로우, 인도네시아 멤버 가입으로 인도네시아발(發) 유튜브 폭발을 기록 중인 시크릿 넘버 등 예가 워낙 많다. 국내시장 돌파에 늘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획사 아이돌이라면 이처럼 해외 타깃시장 특화형 자체콘텐츠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볼 때다.

 

 이처럼 큰 차원에서, K팝 등 한류산업은 코로나19 상황을 그저 ‘해외진출이 멈춘 시점’처럼 여겨선 안 된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야외활동이 둔화돼 모두 인터넷 콘텐츠만 열심히 소비하는 지금을 ‘기회’로서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힌트는 ‘별 것도 아닌’ 콜럼부스의 달걀, ‘쥬리풀 데이즈’가 이미 던져준 상황이다. 더욱 다양한 전략들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 평론가

 

사진=로켓펀치 유튜브 채널 콘텐츠 ‘#JURIFUL_DAYS’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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