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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06 19:00:49, 수정 2017-12-06 19:00:49

눈시린 남쪽바다… 따뜻한 겨울 추억 쌓아볼까

가슴 찡한 역사·먹거리 풍성한 '해상낙원' 경남 남해
  • [남해=글 사진 전경우 기자] 따뜻한 곳에서 연말을 보내고 싶을때 제주도가 아니라면 경남 남해가 답이다.

    남해는 온화한 기후가 겨울 내내 이어져 운동선수들의 전지훈련 장소로 인기 높은 곳이다. 제철을 맞은 멸치 등 풍성한 해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라 먹거리도 풍성하다.

    ▲사람이 보물, 남해 독일마을에서 만난 나이팅게일

    남해는 ‘보물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가장 큰 보물은 ‘사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각지의 명사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는 여행상품을 개발 중인데 남해의 명사는 독일마을의 파독 간호사 석숙자씨다. 그는 1973년 독일 레버쿠젠으로 떠난 뒤 30년을 독일에서 살다 귀국해 남해에 둥지를 틀었다. 남해 독일마을에 가면 석씨를 직접 만나 가슴 찡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만든 역사는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잘 알려진 이야기다. 1960년대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76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에게 원조를 거부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에게 원조를 요청한다. 그리고 차관의 담보로 1만8993명의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 1만1057명을 파견했고 그들이 보낸 돈은 총 1억 153만달러로 대한민국 총수출액의 10%에 육박했다. 

    열악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모든 것을 바치며 운명의 무게를 감당했다. 남해 독일마을에서 만난 석씨는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1만5000원이었고 파독 간호사는 15만원을 받았죠. 첫해 750마르크를 벌어서 20마르크의 생활비를 남기고 730마르크를 한국에 보냈어요”라고 증언했다. 간호사와 광부들은 마늘을 먹는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을 피해 주말이면 폴란드로 넘어가 삼겹살을 구으며 향수를 달랬다. 독일 마을 입구 ‘남해파독전시관’에 가면 당시 독일 현지의 분위기와 흔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독일마을은 2002년 남해군의 도움과 행정안전부의 예산을 받아 만들어졌다. 당시 김두관 남해군수의 형이 파독 광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마을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2006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독일어 캠프를 진행하면서부터다. 2010년 시작한 옥토버페스트도 마을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현재 독일마을에는 41가구가 살고 있다. 

    ▲금산 보리암에 올라 남해를 내려다 보니

    남해는 1973년 남해대고가 연결되며 ‘섬 아닌 섬’이 됐지만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면 사방이 짙푸른 바다, 섬은 여전히 섬이다.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보리암은 팔고안 갓바위,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국내 3대 기도처로 유명하다. 보리암은 여수 향일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와 함께 ‘4대 관음성지’에도 들어간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이 금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하고 대업을 이뤘다고 한다.

    금산의 높이는 681m다.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상 부근은 기암괴석이 즐비한 암릉지대가 있어 제법 험하다면 험한 산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이 오는 곳이라 보리암 초입 매표소에서 보리암 정상 부근까지 마을버스가 다닌다. 향일암까지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잠시만 땀을 흘리면 남쪽 바다에 보석같이 섬들이 박혀있는 ‘한려수도’의 진면목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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