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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56. 한국 전통무용 '살풀이춤'

입력 : 2017-11-19 18:57:37 수정 : 2017-11-19 18: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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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구명시식을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느낀 것은 영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국적과 민족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여주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사후에도 고유전통의 문화를 사랑함은 물론 그것을 즐기려고 하는 성향이 산 사람들보다도 더욱 간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한(恨)을 많이 간직한 민족이다. 개인의 한은 약해보여도 응집된 한은 엄청난 힘을 갖는다. 그러한 관계로 일본이 이 땅에서 처음으로 저질렀던 만행이 바로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을 없애는 일이었다. 나라 잃은 국민의 구심점을 없애고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책으로 전통문화의 말살을 기획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온갖 구실로 격하시켰던 우리의 음악.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잊혔던 그 음악을 놀랍게도 영혼은 기억하고 있었다. 100여 년 전에 죽은 영가들이 찾아와 노래를 청하고 80년 전에 죽은 분도 찾아와 그 당시 유행했던 ‘창가(唱歌)’를 청할 때면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이미 악보조차 소실된 노래들을 그들은 아직도 사랑하고 애창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30여 년 동안 우리의 고유문화를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의식인 구명시식에 접목시키고자 애써왔다. 우리가 액션영화나 멜로영화를 좋아하듯 영혼도 ‘재미’와 ‘감동’이 있는 의식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왕에 영혼들을 위한 의식을 한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에 구명시식 안에는 살풀이와 고전 무용, 그리고 승무로 이어지는 춤이 있고, ‘사랑이여’ ‘창부타령’ ‘백발가’로 이어지는 노래가 있다. 한마디로 영혼을 위한 종합예술인 셈이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살풀이춤’이다. 웬일인지 살풀이춤만 시작되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영가들이 눈물 흘리며 감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맺혔던 그 무엇을 춤사위를 통해 위로 받곤 한다.

물론 개중에는 짓궂은 남자 영가들도 있어 춤추는 분 옆으로 슬쩍 다가와선 자세히 몸동작을 살피거나 슬쩍 뒤에서 안는 분도 있지만 굳이 이를 막을 생각은 없다. 뭐니 해도 살풀이춤이야 말로 가장 섹스어필한 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애절한 걸로 따지자면 이 춤을 따라올 춤사위는 없겠지만 그 속에는 지극히 정제된 색(色)이 조용히 흘러내린다. 온 몸을 다 감싸 안은 옷깃 너머로 달빛이 투영되어 그려지는 여인네의 아름다운 곡선을 나타내니 어떤 남자인들 살풀이춤을 추는 여인네를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그뿐 아니다. 한국에서 현재 사물놀이 최고의 장쇠도 구명시식에 참여하여 흥을 돋우고 있다.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은 100년 전에 죽은 영가나 10여 년 전에 죽은 영가나 다르지 않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의문사 당한 영가들을 위한 구명시식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느낌이 좋지 않아 의식을 청한 당사자에게 다음으로 미루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돌아가고 난 후 갑자기 군에서 의문사를 당한 영가들이 선원 안을 가득 메웠다.

군 의문사영가들은 어떻게 ‘귀신같이’ 알았는지 선원에 몰려와서 자신들의 죽음도 밝혀 달라며 일종의 ‘침묵시위’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통기타 가수에게 그들을 위한 노래를 청해 달래야했다. 그때 노래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삽입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노래가 끝나자 영가들은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하나씩 사라졌다. 한이 조금은 풀렸는지 표정은 좋아보였다.

우리는 흥과 한을 함께 한다. 살아있을 때는 정제된 침묵으로, 죽어서는 소리 없는 외침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한을 오랜 세월 살풀이 같은 춤으로 달래 왔다. 다른 민족에게서는 느낄 수 없고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한이 우리의 정서이며 진정한 문화가 아닌가 한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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