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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44. 하늘이 불러올린 홍계관 선생

입력 : 2016-09-28 04:45:00 수정 : 2016-09-27 18: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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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야사(野史)를 보면 사람의 운명에 관한 기이한 일들이 많다. 예기치 못한 운명을 겪은 사람들이 많아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란 말이 나왔으리라. 운명과 관련된 점술가 이야기는 특히 그렇다. 그중 한 사람, 현묘신통(玄妙神通)한 홍계관 선생은 장안 최고의 점술사였다.

조선 명종 때 나라에 심각한 흉년이 들었다. 흉년의 원인을 민심을 흉흉하게 하는‘점쟁이’들 때문이라 생각한 명종은 장안에 있는 모든 점쟁이를 잡아들이라 했다. 그때 한양 최고의 점술사 홍계관도 잡혀왔다. 홍계관이 잡혀왔다는 소식에 신하들은 천문지리에 능하고 풍수에 해박하니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청을 하였다. 명종은 그 말에 화가 났지만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어 홍계관을 시험하기로 했다. 명종은 상자를 가져오라고 시킨 후 “이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맞춰 보거라” 홍계관은 “쥐가 들어있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몇 마리가 들어있는지 맞춰 보거라” 그러자 홍계관은 “세 마리가 들어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명종은 “틀렸다. 이 상자에는 쥐가 두 마리가 들어있다. 세치 혀로 왕을 속이려 들다니. 저 자의 목을 당장 쳐라”

형장으로 끌려가는 홍계관은 죽는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점괘가 왜 틀렸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홍계관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신하들은 상자 안의 쥐를 꼼꼼히 살폈다. “이거 암놈 아닌가” 명종은 쥐 한 마리가 암컷이란 소리에 흠칫 놀랐다. “당장 쥐의 배를 갈라 보거라” 그러자 놀랍게도 암컷의 배에는 새끼 쥐가 들어있었다. 과연 홍계관의 말대로 상자 안에는 세 마리의 쥐가 들어있었다. 명종은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얼른 홍계관을 궁으로 데려오라고 명했다.

형장으로 끌려간 홍계관은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명(命)을 점쳤다. 한 시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괘가 나왔다. 홍계관은 사형수에게 사정했다. “마지막 부탁이니 딱 한 시간만 있다가 형을 집행하면 안되겠소” 사형수는 홍계관의 말을 듣고 한 시간을 기다려줬다. 그런데 저 멀리서 군사가 형장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형을 멈추시오, 당장 형을 멈추시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사형수는 달려오는 군사가 급하게 손을 흔들자 빨리 형을 집행하라는 신호인줄 알고 홍계관의 목을 치고 말았다. 홍계관의 처형 소식을 들은 명종은 “아차차차... 내가 큰 실수를 했네”라며 후회했다하여 홍계관의 사형이 집행된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설(說)이 있다.

격암 남사고 선생과는 달리 민초로 살면서 점술가로 덕망이 높았던 홍계관 선생은 나와는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송파를 떠나 후암선원을 대학로로 옮긴 어느 날 한복에 상투를 튼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저 떠돌이 영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눈빛과 행동이 다른 영가들과 달랐다. 그 영가는 다른 영가들에게 이런 저런 상담도 해주는데, 들어보니 영가들의 사주를 듣고는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역술에 맞춰 천천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산 사람만 사주를 보는 줄 알았는데 죽은 사람이 무슨 사주를 볼까.’ 나는 그 영가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주를 보는 모습이 허튼 점술가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이 곳에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내 말에 그 영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집에 내가 있는 건 당연한 일 아니오, 당신이야말로 뭐하는 사람이오” 나는 뜨끔했다.

과거 이곳의 주인장이었다니 오히려 내가 죄송하여 누구신지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나는 홍계관이오. 당신도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보오” 그 말에 나는 놀라웠다. 이 자리가 홍계관 선생이 과거 운명을 점쳤던 집터였다니,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그 분은 평범한 점술가가 아니었다. 도통했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는 신인(神人)이 아니었을까한다. 홍계관 선생은 연신 “그 놈의 쥐새끼 때문에...”라며 껄껄 웃었다. 그것도 자신의 명(命)이니 어쩔 수 없다며 한숨 쉬었다. 점괘는 점괘일 뿐이다. 괘는 운(運)은 알아 있어도 명(命)은 이길 수 없다.

영가로서 홍계관 선생을 뵌 이후 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영능력자로서 든든한 ‘빽’이 하나 생긴 기분이라고나 할까. 홍계관 선생은 조선시대 격동기 때 점을 통해 하늘의 죄를 짓는 천기누설을 했다. 너무 정확하여 하늘도 이를 좌시하지 않았는지 서둘러 홍계관 선생을 하늘로 불러들인 게 아닌가 한다. 선생은 왕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실상 하늘에서 내린 벌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절 홍계관 선생이 너무 유명하다보니 여기저기 이름을 도용한 사람들이 나왔다고 한다. 나 역시 뉴저지에 사는 교포가 내 이름을 도용하였다가 뒤늦게 사과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름은 빌릴 수 있어도 능력까지야 어찌 빌릴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으니 나도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문화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게 내 소망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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