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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 “이 세상, 선과 악 구분하기가 어디 쉽나”

입력 : 2008-02-14 10:20:19 수정 : 2008-02-14 1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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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는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이야기다. 여자를 악질적으로 부려먹던 포주는 그 여자를 죽여버리는 연쇄살인범을 위해 ‘추격’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팍팍한 일상 속에 파묻어놨던 일말의 양심을 끄집어낸다. 쫓는 자나 쫓기는 자나 그리 올바르지 않은 인물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악역은 따로 있다. 바로 무력한 공권력. 연쇄살인범을 잡겠다는 목표는 포주와 같지만, 그 방법이 영 서투르고 답답해 보는 이의 가슴을 치게 한다. 스릴러지만 사람 냄새가 진하고, 세련됐지만 깔끔하진 않다. 

 바로 이 점이 배우 김윤석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이름을 선두에 내건 첫 작품으로 ‘추격자’를 택한 그는 이 영화의 매력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사실 충무로에서 ‘추격자’는 이미 ‘대박’으로 통하는 작품. 인터뷰는 들떠 있는 배우의 단면을 어떻게든 잡아내보려는 기자와, ‘개봉 해봐야 알지!’하며 껄껄 웃고 넘기는 김윤석의 핑퐁 게임 같았다.

# 선과 악이 모호한 세상

 세상을 굳이 선과 악으로 나눈다면, 그동안의 김윤석은 늘 후자에 가까웠다.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도, 영화 ‘타짜’에서도 그는 악역의 진수를 보여줬다. ‘추격자’에서 맡은 역인 포주 엄중호도 딱히 좋은 인물은 아니다.

 “야비하고 치사하고 이기적이면 악인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세요. 그렇지 않은 대한민국 성인이 있느냐 말이죠. 사실 다 그렇잖아요. 저를 포함해서.(웃음) 그리고 또 웃긴 게 보통 우리는 나쁜 사람을 참 잘 묘사해요. 반면 착한 사람은 뭉뚱그려 설명하잖아요.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들도 마찬가지라서 리얼리티 살아있는 인물을 찾다보면 그게 악인인 경우가 많죠.”
 선하다, 악하다를 넘어서서 현실 그 자체를 그려낸 작품에 끌리는 그의 성향은 ‘추격자’를 보고 한방에 매료되는 데 크게 한 몫했다. 엄중호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엄중호라는 인물을, 마치 기자 앞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기가 막히게 묘사해줬다.

 “만약에 기자생활을 한 20년 했다고 생각해봐요. 사실 왠만한 사건 터져도 안 놀라잖아요. 신입 기자가 뭐 좀 하려고 하면 ‘임마! 예전에 다 했어’ 이러고.(웃음) 능구렁이가 되죠. 엄중호도 그런 인물이에요. 경찰을 오래 하다 잘렸기 때문에, 법과 사회 안에서 제 멋대로 놀 수 있는 구역이 있는 거예요. 웬만하면 ‘아삼륙’으로 아는 사이고, 만사가 귀찮은 거죠. 엄중호가 처음 나선 것도 딴 게 아니라 단지 자기 돈이 떼여서잖아요.(웃음)”

 이렇게 인물 분석을 하는 김윤석도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었다. ‘타짜’의 아귀다.

 “여자들은 아귀가 그렇게 섹시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깜짝 놀랐죠. 여자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동물인지 몰랐어요.(웃음)”

# 포스터는 쑥스러워

 처음 신인감독이 내민 시나리오의 90%는 밤 장면, 그 중 70%는 비오는 장면.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 영화였지만 김윤석은 ‘추격자’를 두고 ‘이거, 물건이다’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 공식도, 선과 악의 구분도 없는 이 시나리오에 매료됐기 때문. 그래도 촬영은 각오했던 것의 두배는 더 힘들었다. 골목 사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뛰고 또 뛰는 사이, 육체는 극도의 피곤함에 시달렸다. ‘센 영화’다 보니, 너무 몰입하다보면 악몽에 시달렸을 법도 하다.

 “하하. 너무 피곤해서 악몽 꿀 시간도 없었어요. 또 배역에 대한 면역력도 있죠. 집에 돌아가면 인간 김윤석이 되는 거죠. 자연인 김윤석은 배우 김윤석한테 안지니까요.”

 자연인 김윤석은 그냥 평범한 가장이다. 세살, 여섯살인 두 딸과 놀아주고, 시간만 나면 가족들과 여행갈 계획에 행복하다.

 “집에서는 제가 호구(어리숙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예요, 호구.(웃음) 딸들이 절 데리고 얼마나 괴롭히는데. 영화 개봉 잘되고 나면, 부모님 하고 같이 따뜻한 나라에나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쉬면서 차기작도 좀 고르고.”

 자신의 이름부터 뜨는 영화 오프닝, 얼굴이 크게 나오는 포스터, 주연배우라는 이름이 어색해지지 않은 위상, 개봉 전부터 들썩이는 ‘추격자’의 뜨거운 호응. ‘좋지 않아요?’ ‘설렐 것 같아요’ ‘기분이 어때요?’라고 재차 찔러봐도(?) 김윤석은 한결같다.

 “아! 글쎄. 이제 개봉한다니까.(웃음) 포스터는 좀 쑥스럽죠. ‘아이구!’ 하며 빨리 지나가고 싶고. 다른 소감은 영화가 정말 잘되고 나서. 그때 이야기 합시다.(웃음)”

 이날 김윤석은 ‘추격자’가 여타 스릴러와 다른 점을 조목 조목 짚으며,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다. 생생한 서울 밤거리, 팔딱팔딱 뛰는 리얼리티 등. 이는 더이상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미 영화를 보고 매혹된 관객들의 열성적인 리뷰가 온라인에 가득하니 말이다. 

스포츠월드 이혜린, 사진 김용학 기자 rinny@sportsworldi.com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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