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간 연결로 ‘뺑뺑이’ 차단
뇌신경 등 강점 분야 책임지고
더 전문적 치료는 타기관 연결
국립대 위주 지원 탈피 촉구
설립 주체보다 기능·역할 중요
강원 첫 ‘연구중심병원’ 선정
AI 조산 예측·의료기기부터
뇌출혈 비대면 협진 등 개발
지역 치료 역량 강화에 초점
“지역에서 치료가 가능한 중증·필수의료는 저희가 최대한 책임지겠습니다.”
조재호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신임 병원장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줄일 해법으로 병원 간 연결을 강화한 ‘지역완결형 의료’를 제시했다. 뇌신경질환과 중증응급, 골절·외상 등 병원이 강점을 가진 분야는 책임지고 고난도·희귀질환은 한림대의료원 산하 병원을 포함한 전국의 전문 의료기관으로 신속하게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치료 이후에는 다시 지역에서 회복과 관리를 이어가도록 한다.
지난달 제23대 병원장으로 취임한 조 병원장은 최근 원내에서 열린 취임 미디어데이에서 이 같은 청사진을 밝혔다. ▲중증·필수의료 역량 강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 ▲연구중심병원 경쟁력 강화 ▲인공지능(AI)·디지털 헬스케어 육성이 4대 발전 방향이다. 목표는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느라 길에서 시간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10년 지킨 응급실…지역에 필요한 진료에 역량 집중
넓은 면적과 산악 지형, 빠른 고령화에 전문 인력 부족까지 겹친 강원에서는 한 의료기관의 진료 공백이 주민들의 치료 기회를 크게 좁힐 수 있다. 이번 간담회에서도 지역 응급의료를 지탱해온 의료진의 책임감과 인력난에 대한 고민이 드러났다.
춘천성심병원은 2016년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뒤 세 차례 재지정을 거치며 강원 영서지역에서 응급환자의 시술·수술과 입원 등 최종 치료를 담당해왔다. 조 병원장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지 않고 전문의 중심의 24시간 책임진료 체계를 유지했다.
병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평균 약 2만8400명의 응급환자를 진료했다. 2023~2025년 119로 이송된 환자 1만9387명 가운데 6992명이 입원 치료로 이어졌다. 올해도 9월 말까지 응급실 내원환자 2만2890명, 119 이송환자 5829명을 기록했다.
현재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 6명 가운데 3명이 뇌출혈 수술을 담당할 수 있고, 신경과에서는 교수 9명이 뇌졸중 등 뇌신경질환을 진료한다. 급성 심근경색 중재시술을 담당하는 순환기내과 전문의 3명은 24시간 365일 응급진료를 맡는다. 이러한 전문인력과 응급실의 협진을 강화해 골든타임이 중요한 환자의 시술·수술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태헌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기획실장(응급의학과 교수)은 응급환자를 받아줄 다른 병원이 부족한 지역의 현실을 짚었다. 한 곳이라도 진료를 멈추면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이 더욱 줄어드는 만큼 가능한 한 직접 수용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내에서는 웬만하면 우리가 해결하자는 분위기”라며 “지역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의정 갈등으로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했을 때는 교수들이 직접 당직을 맡았다. 조 병원장은 주변 병원의 응급진료 공백으로 환자가 평소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을 때도 의료진이 버텼다고 돌아봤다. 응급실을 지켜온 동력으로는 ‘교수들의 열정과 헌신’을 꼽았다.
조 병원장에 따르면 앞으로의 투자 역시 지역 주민이 위급할 때 믿고 찾을 수 있는 진료 기반을 갖추는 데 맞춘다. 병원 규모나 진료 분야를 고르게 늘리기보다 지역 수요와 병원의 전문성이 맞닿는 영역에 인력과 의료자원을 집중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 고도화, 뇌신경질환 특화, 골절·외상을 포함한 근골격계 질환 전문화가 중심축이다.
◆잘하는 치료는 책임지고, 필요한 병원은 연결… ‘상생의료’
조 병원장은 지역에서 가능한 치료는 책임지고,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연결하는 ‘상생의료’를 강조했다. 치료 이후에는 지역 병·의원과 재활·회복기 의료기관으로 회송해 관리를 이어가는 ‘열린 지역 거점병원’을 지향한다.
한림대의료원 네트워크도 활용한다. 간담회에서는 급성 심근경색 환자에게 관상동맥우회술 등 수술이 필요해지면 평촌의 한림대성심병원이나 동탄성심병원으로 연계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이재준 한림대의료원장은 중환자 치료와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에크모) 등 의료원 내 역량을 활용해 최종 치료까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조 병원장은 “한 병원 자체가 모든 기능을 다 확대해서 수용한다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며 “각 의료기관이 잘하는 역할을 분담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지역 전체의 의료 역량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인력 선순환·기능에 따른 지원
청사진을 실행할 가장 큰 과제는 인력 확보다. 조 병원장은 “강점을 가진 진료 분야에는 지속적인 인력 투자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내과 등 일부 필수진료 분야는 의사를 구하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밝혔다. 근무·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한편, 전문의가 전공의를 가르치고 이들이 다시 지역의 의료진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원내 정형외과 전공의 정원은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조 병원장은 세부 전문분야를 가르칠 지도전문의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지역 병원이라도 전문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수련환경이 마련돼 있으면 전공의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원 필수의료 지켜온 사립대병원…“정부 지원, 설립 주체보다 역할 살펴야”
지역의료 지원정책에는 강원의 의료체계가 형성돼온 과정을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의 국립대병원 중심의 필수의료 강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강원에서는 춘천성심병원과 강릉아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사립대병원들이 오랫동안 중증응급과 필수의료를 담당해왔다는 것을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설립 주체와 관계없이 실제 수행하는 기능과 책임에 상응하는 지원·보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조 병원장은 “국립대나 사립대라는 설립 주체보다 실제로 병원이 수행하는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강원도라는 특수성을 인정해주고, 원래 잘하던 것들에 대해서는 같은 지원과 보상체계를 염두에 둬달라”고 말했다.
◆강원 첫 연구중심병원… AI·디지털 기술로 지역의료 뒷받침
연구와 미래의료도 지역의 치료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춘천성심병원은 지난해 강원특별자치도 의료기관 최초로 보건복지부 ‘제1기 인증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됐다. 최근 3년간 연구비 412억원을 수주했고 논문 463건, 특허 출원 193건·등록 88건, 기술이전 11건의 성과를 냈다.
뉴프론티어리서치연구소를 중심으로 조산 예측 AI 모델, AI 기반 위내시경 진단보조 의료기기, 뇌출혈 비대면 협진 플랫폼 등도 개발해왔다. 이 의료원장이 소개한 뇌출혈 협진 플랫폼은 의료취약지 병원에서 촬영한 CT와 환자 정보를 거점병원과 공유해 초기 대응을 돕는 방식이다. 병원은 연구 성과의 임상 적용을 추진하고 AI·디지털 기술을 지역 협진과 환자 전원·회송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해외 협력도 확대한다. 조 병원장은 “약 10년 전부터 몽골 국립의대·외상센터 등과 정형외과 교류를 진행했으며, 지금까지 몽골 정형외과 의사 약 80명이 병원에서 수련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국제 의료협력과 외국인 환자 진료 확대도 모색한다.
조 병원장은 “대학병원의 역할은 모든 분야의 규모를 키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료를 제대로 책임지는 것”이라며 “경쟁이 아니라 상생하는 의료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게 지역 거점병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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