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 음악계에서 AI의 영역은 한계를 가졌다. 가상 가수를 내세우거나, 사람이 만든 노래를 여러 언어로 바꿔 부르게 하는 식이었다. 2023년 가수 이현의 프로젝트 ‘미드낫’의 싱글 ‘마스커레이드’가 AI 음성 기술로 6개 언어 버전으로 공개된 것이 대표적이다. 곡은 사람이 만들고, AI는 이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학원·대학도 ‘AI 작곡' 교육
이제는 곡 자체를 AI가 만든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 음악 플랫폼에 '가을 밤, 이별 후 쓸쓸함을 담은 여성 알앤비 보컬곡'처럼 장르와 분위기, 가사를 텍스트로 입력하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멜로디와 반주, 보컬, 편곡까지 갖춘 완성곡이 나온다. 가사가 없으면 AI가 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간만 다시 생성하거나 악기 구성을 바꿀 수도 있다. 작곡 프로그램이나 악기를 다룰 줄 몰라도 한 곡을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선 교육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SM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SM아카데미는 ‘AI 작곡 클래스'를 열었고, 지자체 문화재단들도 시민 대상 AI 작곡 강좌를 앞다퉈 열고 있다. AI를 활용한 창작물도 쏟아진다.
대학 강의실도 달라졌다. 엑소 카이가 여러 대학과 학과를 체험하는 프로그램 '전과자' 최근 회차에서는 AI를 활용한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수업이 그려졌다. 수강생들이 주제를 정해 10분 동안 가사를 쓰고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에 입력하자, 클릭 몇 번 만에 노래 한 곡이 완성됐다. 90년대 랩, 라틴 팝, 레게톤 등 장르를 고를 수 있는 것은 물론, 세부 스타일까지 프롬프트로 주문할 수 있었다.
◆K-팝의 AI 활용법
K팝 업계도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브는 AI 음성기술 기업 수퍼톤을 자회사로 두고 있고, JYP엔터테인먼트는 기술 자회사 블루개러지를 통해 AI 아티스트 제작에 나섰다. 가상 캐릭터와의 소통에 익숙한 Z세대와 알파세대를 겨냥해, K팝의 정체성에 AI 기술을 입힌 새로운 아티스트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유통 현장은 신중하다. 지난 4일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주관으로 열린 ‘MWM 콘퍼런스'에서 김인호 YG PLUS 리더는 AI 생성곡이 쏟아지지만 실제 청취 비중은 1~3%에 그친다는 글로벌 음원 플랫폼 디저 통계를 언급하며 "인디 플랫폼에 유입된 다수 AI 음원을 순수 창작자 보호 차원에서 반려했다. 규제보다는 진흥을 위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합의와 비례 정산 방식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유겸 마운드미디어 대표도 권리 관계와 정산 리스크 때문에 유통사로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AI가 넘쳐날수록 사람의 가치가 오히려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같은 자리에서 최선 하이브 크리에이티브 스태프 오피스 리더는 지금의 흐름을 '풍요의 역설'로 규정하며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가사 한 줄과 서사 등 아날로그적 무대의 흡입력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용자 1억명…소송 상대가 파트너로
눈을 해외로 돌리면, 시장의 중심엔 AI 음악 생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스타트업 수노(Suno)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3년 서비스를 출시한 수노는 지난 2월 누적 이용자 1억명, 월 최대 30달러를 내는 유료 구독자 200만명, 연간 반복 매출 3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용자들이 하루에 만드는 곡만 700만곡이 넘는다. 지난 6월엔 4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54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7개월 전의 두 배가 넘는 몸값이다.
음원 플랫폼에서도 증가세가 뚜렷하다. 디저에 따르면 지난 6월 이 플랫폼에 새로 올라온 AI 생성곡은 하루 약 9만곡으로, 처음으로 신규 업로드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해 1월 하루 1만곡 수준에서 1년 반 만에 9배로 늘었다. 중국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TME)도 자사 플랫폼에서 AI 음악 비중이 2년 새 8.5배 늘었다고 밝혔다.
성장의 이면엔 저작권 분쟁이 있었다. 유니버설뮤직·소니뮤직·워너뮤직 등 메이저 3사는 2024년 6월 자사 음원을 허락 없이 학습에 썼다며 수노와 유디오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러나 흐름은 1년여 만에 뒤집혔다. 유니버설은 지난해 10월 유디오와, 워너는 11월 수노와 합의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법정의 상대가 사업 파트너로 돌아선 것이다.
그 결과물이 지난달 공개된 수노의 v6다. 워너뮤직 등의 라이선스 음원을 학습에 활용한 첫 모델로, 수노는 구독 수익 일부를 권리사에 배분한다. 참여를 선택한 아티스트에게 보상하는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다만 유니버설·소니는 여전히 수노와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창작 현장에선 이미 AI가 작업 도구로 자리 잡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드물다. 우승현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회장은 “AI가 창작부터 발견·유통·소비까지 음악산업 전반에 들어온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의 역할과 방향을 찾는 것”이라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경계할 것인지, 어디에서 기회를 찾아 경쟁력으로 만들 것인지, 어떤 기준과 원칙을 세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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