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백업’은 옛말이다. 어디든 뛰어야 했던 이들이 이젠 어디서든 제 몫을 해내는 만능 열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오는 11월 열리는 2026 신한 SOL KBO 시상식서 초대 유틸리티 수비상의 향방이 가려진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3년 전 도입한 수비상에 올해 새로 추가한 부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이미 2022년 골드글러브에 유틸리티 부문을 신설했고, 이듬해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이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구본혁(LG)과 박지훈(두산), 안상현(SSG)이 지난 16일 발표된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후보 자격은 정규리그 총 수비 540이닝 이상, 3개 이상 포지션서 각각 50이닝 이상이다. 좌·중·우익수는 외야 한 자리로 합산하며, 50이닝에 못 미친 포지션은 수비 기록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
구본혁은 내야 세 자리와 우익수서 총 880⅓이닝, 박지훈은 1루·3루·유격수와 외야에서 628⅔이닝, 안상현은 2루·3루·유격수 등 545⅓이닝을 소화했다.
수상자는 투표 점수 75%와 수비 기록 점수 25%를 더해 결정한다. 첫 시상인 만큼 서로 다른 포지션의 기록을 공정하게 비교할 기준도 필요했다. 기존 수비 지표(KUZR)에선 내·외야의 평가 항목과 점수 폭이 달라 그대로 합산하면 특정 항목의 비중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O 관계자는 “(그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각 항목을 해당 포지션 시상 후보군 전체 성적을 기준으로 표준화해 같은 척도로 맞춘 뒤 합산한다”고 전했다.
구본혁은 3루수 부문 수비상 후보에도 포함됐다. 규정에 따르면 유틸리티 부문 수상 예정자가 다른 부문에서도 수상할 시 중복 수상 없이 유틸리티상은 시상하지 않는다.
그는 정규리그서 2루·3루·유격수를 각각 200이닝 넘게 지켰다. 여러 포지션을 두루 경험했어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게 구본혁의 설명이다. 포지션마다 타구를 읽는 각도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구본혁은 “어느 수비에서든 (멀티포지션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똑같이 더 잘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뗀 뒤 “우리는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그 일원인 만큼 수비에서 결코 허술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팀의 신뢰는 가을 무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4일 두산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서 부상 회복 중인 오지환 대신 선발 유격수로 나선 게 대표적이다.
나머지 두 후보 역시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출전 기회를 넓혀왔다. 프로 11년 차 안상현은 지난해 처음 한 시즌 100경기를 넘겼고, 올해도 94경기에 출전했다. 박지훈도 2020년 데뷔 후 개인 최다인 114경기를 뛰었다. 시즌 초부터 바라던 유틸리티 수비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 상 신설 소식을 듣고 곧장 팀 동료인 박찬호에게 “진짜 후보라도 꼭 들고 싶다”고 털어놓을 만큼 의지가 컸다. 수상 가능성에 대해선 “(구)본혁이 형이 수상할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구본혁은 “과찬이다. 그렇게 생각해 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다른 팀에도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제 몫을 다하는 선수들이 많다”며 “이번 상을 계기로 그런 선수들과도 경쟁하며 서로 자극받을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한 자리를 지키는 선수뿐 아니라 여러 자리를 오가는 선수들의 가치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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