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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광장] 영화 안보고, 배우 집앞 찾아가 고성…선 넘은 ‘암살자(들)’ 비난

입력 : 2026-10-07 07:00:00 수정 : 2026-10-07 0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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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영화 한 편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지난달 개봉한 ‘암살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개봉 이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스크린 밖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에 논쟁이 뒤따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만큼 어디까지가 허용될 수 있는 해석인지 따져볼 수 있다. 영화가 제시한 가설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만큼 작품을 비판할 자유 역시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다만 최근 상황을 지켜보면 지금 벌어지는 논쟁이 과연 영화에 대한 비판에 머물러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영화를 향한 비판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논란의 화살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 개인에게까지 향했다. 배우 유해진의 외모를 비하하더니 일부 단체 회원들은 그의 자택 앞에서 집회까지 열고 고성을 질렀다. 

 

배우는 극 중 인물을 연기한 사람이지 영화가 제시한 모든 역사적 해석을 현실에서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의 외모를 조롱하고 과거 출연작까지 끌어와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영화의 역사적 오류를 밝히는 데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작 영화를 보지도 않은 채 작품 전체를 규정하고 비판하는 모습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영화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면서도 “토할 것 같아서 (영화는) 안 봤다”고 말했다. 예고편이나 시놉시스만 보고 관람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자유다. 그러나 작품을 보지 않는 것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역사 왜곡 여부를 따지려면 더욱 그렇다. 어떤 장면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영화가 특정 가설을 사실로 단정하는지 아니면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는지, 작품 전체가 어떤 결론으로 향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일부 장면과 전언만으로 작품 전체를 ‘왜곡’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것은 비평이라기보다 선입견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영화를 비판하려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가설이 대중에게 소개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지상파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차례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다룬 바 있다. 해외에서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처럼 공식 발표를 둘러싼 의혹과 가설이 오랜 시간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됐다.

 

물론 과거에 비슷한 의혹이 다뤄졌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모든 영화적 해석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놓고 따져야 한다. 영화가 어떤 사실을 근거로 어디까지 상상력을 확장했는지, 실제 역사와 허구를 관객에게 충분히 구분해 전달했는지 구체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반박할 방법도 충분하다. 역사적 자료와 기록을 제시할 수 있고 평론과 토론을 통해 영화가 내놓은 가설의 허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특정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법적 판단을 구할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에도 힘이 실린다.

 

그러나 정치적 공방이 거세지고 공격의 대상이 배우 개인에게까지 확대되면 정작 중요한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보다 어느 진영의 영화인지, 누가 출연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처럼 변해버린다. 작품에 대한 비평이 진영 간 공격으로 대체되는 순간 영화가 던진 질문을 둘러싼 토론 역시 설 자리를 잃는다.

 

창작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작의 자유란 창작자가 무엇을 만들어도 비판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면 혹평도, 반론도 감수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처럼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면 더욱 엄격한 검증과 비판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책임이 작품 밖 개인의 삶과 다음 창작의 기회까지 향해서는 곤란하다. 한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배우의 집 앞까지 찾아가고, 다시는 비슷한 작품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식의 압박이 반복된다면 창작자가 받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논란이 될 소재는 피하고 민감한 질문은 던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문화예술은 세계에서 전에 없던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비롯한 K-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소비되면서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성취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하고 때로는 실패하거나 논쟁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창작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문화의 성과를 요구하면서 정작 불편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창작자와 배우를 위축시킨다면 모순적이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문화예술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영화를 비판하면 된다. 다만 비판하려면 적어도 무엇을 비판하는지는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비판은 작품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스크린에서 시작된 논쟁이 배우의 집 앞까지 이어질 이유는 없다. 작품을 비판할 자유와 사람을 위협할 자유는 같은 말이 아니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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