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라는 그래미 어워즈의 보수성과 차별적 구조에 반발한 해외 스타들의 역사는 깊다. 이들의 반발은 특정 결과에 대한 불만을 넘어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그래미의 장르·인종적 경계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 힙합계의 집단 보이콧이다. 당시 그래미는 힙합 열풍을 반영해 처음으로 베스트 랩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했다. 그러나 정작 시상식 생중계에선 시간이 넘친다며 해당 부문을 통째로 빼버렸다. 힙합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편성 문제가 아니라 랩을 주류 음악보다 한 단계 아래로 취급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수상 후보에 올랐던 윌 스미스와 DJ 재지 제프 등 주요 래퍼들은 시상식에 불참하며 그래미를 보이콧했다. DJ 재지 제프와 듀엣으로 해당 부문 초대 수상자가 됐지만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은 윌 스미스는 “모욕적인 처사다. 주최 측의 무지”라며 “랩을 제대로 알려주려고 보이콧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 출신의 록 뮤지션 시네이드 오코너는 그래미에 반기를 들며 수상까지 거부했다. 1991년 시상식에서 오코너는 올해의 레코드를 비롯해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위원회 측에 수상 거부 서신을 보냈다. 그래미가 예술보다 상업적 성공과 물질적 이익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그는 베스트 얼터너티브 뮤직 퍼포먼스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꾸준한 흑인·힙합 차별 논란…슈퍼스타도 보이콧
힙합 장르와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차별도 계속해서 그래미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상업적·비평적 성과를 거둔 래퍼 DMX가 단 한 부문도 노미네이트되지 못하자 힙합 대부 제이지는 당시 시상식 참석을 거부했다. 그래미가 힙합을 찬밥 신세로 다룬다며 평가 방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베스트 랩 앨범을 수상했음에도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제이지는 2004년이 돼서야 아내 비욘세의 수상을 현장에서 직접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했다. 2024년 시상식 수상 소감을 통해 “비욘세는 누구보다 그래미가 많은데, 올해의 앨범을 한 번도 못 받았다”며 “그래미 당신들 기준으로 봐도 말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순혈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유지했다.
카녜이 웨스트는 그래미에서 총 21개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지만 본상은 하나도 받지 못했다. 2015년 그는 벡(Beck)이 비욘세를 제치고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자 결정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상식 무대에 난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래미가 힙합 및 흑인 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기득권 위주로 심사한다며 시상식 현장에 거리를 뒀다.
웨스트는 이듬해 평단의 극찬을 받은 흑인 뮤지션 프랭크 오션의 앨범이 그래미 후보에 오르지 못할 경우 다음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2017년 오션은 “그래미의 심사, 후보 선정, 투표 시스템은 너무 낙후됐다”며 심사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웨스트 또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했다. 특히 2020년 그는 그래미 트로피를 변기에 넣고, 그 위에 소변을 보는 영상까지 공개하며 논란을 불렀다.
2021년에는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캐나다 출신 흑인 팝스타 위켄드가 모든 수상 후보에서 제외됐다. 당시 글로벌 히트곡 블라인딩 라이트(Blinding Lights)로 성과를 거뒀음에도 단 한 개 부문에도 후보로 지명되지 못하자 위켄드는 “그래미는 부패했다”며 영구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어 비욘세를 필두로 저스틴 비버 등도 시상식 불참 혹은 보이콧을 표명했다.
힙합 제왕으로 불리는 드레이크도 이듬해 비슷한 이유로 2개 부문의 후보를 본인이 직접 철회하고 이후 출품을 전면 중단했다. 2017년에도 그는 자신의 노래가 최우수 랩 노래상을 받자 “그 곡은 랩 노래가 아니라 팝”이라며 그래미가 본상을 주지 않으려고 꼼수를 썼다고 지적했다.
◆수상자마저…무대서 트로피 쪼개기도
수상자 본인이 직접 무대에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7년 흑인 인권을 다룬 비욘세의 앨범 레모네이드(Lemonade)는 올해의 앨범상 후보에 올랐지만 백인 가수 아델에게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 당시 아델마저도 무대 위에서 “내가 이 상을 받을 순 없다. 이 상은 비욘세가 받아야 한다”며 트로피를 둘로 쪼갰고, 비욘세는 눈물을 보였다.
해외 스타들의 잇따른 보이콧은 결국 그래미가 자초한 결과다. 비주류 음악을 제도권으로 끌어안는 과정에서 그래미는 일부 제도를 개선했지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아티스트들조차 여전히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비백인·비주류 장르를 소외시키며 특정 카테고리에 가둬온 그래미의 폐쇄성은 스스로 권위를 깎아 먹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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