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 회복’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고 했던가. 이기혁(강원)이 생애 첫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환희와 시련을 모두 맛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주에 불과했다.
이기혁은 지난 12일 체코와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 스리백 수비라인의 왼쪽 스토퍼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다. 프로축구 K리그1에서 보여준 활약을 그대로 이어갔다. 클리어링 8회, 가로채기 3회, 볼 리커버리 2회를 기록했다. 또한 9번의 볼 경합 중 5번을 이겨냈다. 체코전 2-1 승리의 숨은 공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시련은 빠르게 찾아왔다. 이기혁은 19일 열린 멕시코와의 A조 조별리그 2차전서 1차전과 동일한 포지션으로 출발했다. 전반전에는 멕시코의 강한 공세를 잘 틀어막았다. 공격 시에는 후방 빌드업의 중심축 역할을 맡았다. 긴 패스로 전방 공격진에게 공을 여러차례 배달했다.
후반 초반 뼈아픈 실점 장면이 문제였다. 공중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골키퍼 김승규(도쿄)와 동선이 겹치며 충돌했다. 이는 곧 상대의 결승골로 연결됐다. 활약이 좋았기에 더욱 아쉬운 장면이었다. 이날 이기혁의 패스 성공률은 86.4%에 달했다. 수비 지표도 훌륭했다. 태클 2개를 성공했고, 걷어내기 4회로 팀 내 1위였다.
단 한 번의 실책이 패배로 직결되자, 일부 팬들은 이기혁의 개인 SNS 계정까지 찾아가 비난을 쏟아냈다. 결국 그는 SNS를 비공개로 전환하며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흔들린 멘탈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다. 2000년생의 젊은 수비수에게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의 압박감은 상상 이상일 터. 이번 2차전의 실수가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비수의 심리적 위축은 경기력 저하와 또 다른 실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시련을 자양분 삼아 한 단계 성장해야 한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선수 시절 성장통을 겪었다. 1994 미국 대회 당시 아쉬운 수비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시련을 이겨낸 그는 2002 한일 대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리베로로 거듭났다.
이제 고개를 숙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 한국의 운명이 걸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32강 최고의 분수령이 될 이번 경기에서 이기혁의 선발 출전은 유력한 상황이다.
사실 이기혁은 대회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의 백업 자원에 가까웠다. 김주성(히로시마), 김태현(가시마), 조유민(샤르자) 등 기존 수비진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하는 악재 속 본선 무대에서 당당히 기회를 잡았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던 만큼,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질 이유가 없다. 큰 예방 주사를 맞은 이기혁이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남아공전에서 홍명보호 스리백의 핵심으로 우뚝 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의 발끝에 한국 축구의 32강 운명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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