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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 이코모스 위원장 “세계유산은 늘 살아있는 제도…부산 세계유산위, 韓 위상 올라간 것” [담담한 만남]

입력 : 2026-02-23 12:00:21 수정 : 2026-02-23 12: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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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은 세계유산 등재 및 보존·관리에 큰 역할을 해온 국내 최고 전문가다. 그는 “세계유산은 결국 미래 유산 제도”라며 전 국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사진= 지동현 기자
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은 세계유산 등재 및 보존·관리에 큰 역할을 해온 국내 최고 전문가다. 그는 “세계유산은 결국 미래 유산 제도”라며 전 국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사진= 지동현 기자

 

흔히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나 화려한 관광지부터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오래된 유산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도시개발의 광풍 속에서 오래된 건축물과 경관이 품은 시간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희소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종묘 앞 세운4구역이 지역 활성화를 내세우며 고층 개발을 추진하는 지금 이 시점에 세계유산의 의미를 다시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유네스코 전문가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한국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대학원 세계유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세계유산 등재 및 보존·관리에 큰 역할을 해온 국내 대표 인문 지리학자다. 1981년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과에 입학한 후 40년 넘게 인문 지리학 외길을 걷고 있다. 한국도시지리학회장,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세계유산분과 문화재 전문위원 등을 지내며 건국대 대학원의 국내 최초 세계유산학과 설립을 주도했으며 ‘남한산성’(2014년)·‘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2018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기여했다. 

 

이코모스는 전 세계의 역사적 기념물과 유적의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 전문가 비정부기구(NGO) 조직이다. 세계유산 등재 심의와 보존 관리 및 평가 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현재 132개국에서 전문가 약 1만명이 활동하고 있다. 국가위원회는 이코모스 정관에서 규정한 목표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각 나라에 설립된다. 

 

◆이코모스, 세계유산 등재·평가의 핵심

 

남한산성. 사진=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 사진=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서울 광진구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 위원장은 “이코모스는 매년 세계유산의 등재 심사를 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라며 “매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이코모스 본부에서 전문가로 구성된 세계유산 패널이 등재를 심의하고 권고안을 작성한 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알린다. 이후 세계유산센터에서 그 내용을 토대로 세계유산위원회에 상정하고 논의 끝에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이코모스의 역할을 설명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행정조직이라면 이코모스는 전문가 네트워크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코모스가 세계유산 등재의 가장 핵심적인 문지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도 이코모스의 역할은 막중하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에서도 이코모스가 자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등재 이후 세계유산을 둘러싼 개발 행위의 영향을 분석한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정부가 세계유산센터에 보내면 센터에서 이에 대한 평가를 다시 이코모스에게 맡긴다. 이코모스는 문화유산을 전담하고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아이유씨엔)이 자연유산을 맡는다.

 

만약 현지 실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세계유산센터에서 이코모스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한다. 전문가 추천은 해당 국가위원회 위원장에게 우선권이 부여된다. 이코모스 국가위원회가 세계유산과 관련해서 빠질 수 없는 곳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중립적 위치가 필요한 이유다. 최 위원장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보존과 관리에 대한 평가와 자문을 이코모스가 담당한다. 세계유산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세계유산 등재의 필수조건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지만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의 쟁점은 결국 OUV를 얼마만큼 깨트리는지 달렸다. 남한산성을 예로 든 최 위원장은 “인간이 지구 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전시켜 온 자연스러운 문화가 의식주다. 인간이 건물을 지으면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게 안전인데 남한산성의 보편성은 안전이다. 성곽은 안위를 지켜주는 안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탁월성은 전 세계에서의 탁월성이 아니라 해당 국가 문화권 안에서의 두드러진 특성”이라며 “조선왕조가 전란을 대비해 임시 수도에 방어를 위해 쌓았다는 게 탁월성”이라고 덧붙였다. 

 

남한산성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남한산성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객관적인 OUV 입증을 위해 총 10개의 기준이 마련됐다. 문화유산이 6개, 자연유산은 4개의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중 하나 이상 충족할 경우 해당 유산에 OUV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최 위원장은 “이 모든 운영 지침은 매년 개정된다. 그러니까 세계유산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고 지금도 살아 있는 제도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OUV와 더불어 완전성과 진정성도 충족해야 세계유산에 오를 수 있다. 특히 진정성에 대해 최 위원장은 “거짓 없는 정보의 출처다. 꾸며낼 수 있으니 모든 것을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하라는 것”이라며 “아랍에서는 진정성에서 제일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없는 것들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서 세계유산으로 만들겠다고 갖고 온다. 현재 등장하는 유산의 대부분이 가짜”라고 우려했다. 

 

◆등재만큼 중요한 보존·관리…모든 책임은 당사국 

 

세계유산 보존·관리를 이코모스가 모니터링하지만 최종 책임은 당사국이 진다. 국제사회를 끌어들일 필요가 없이 당사국이 보존관리에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 위원장은 “그런데 당사국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지해서 신경을 안 쓸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이코모스 모든 멤버들이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세계유산이든지 잘못되면 보고할 의무가 있다. 회원은 전 세계 어디나 세계유산은 무료 입장인데 모두가 이런 미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유산센터에서 보고를 받으면 이 내용을 당사국에 공유하고 설명을 요구한다. 이후 다시 시정을 요구하고 문제가 고쳐지지 않았을 때는 3인1조로 전문가를 파견한다. 전문가는 보존 상태를 체크한 뒤 보고서를 다시 센터에 제출한다. 최 위원장은 “빠져나갈 길이 없다. 모든 비용 또한 당사국이 내야 한다. 보존을 잘못하면 국제적인 망신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유산 보존과 도시개발 논리의 충돌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벌어진다.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조정하는 게 옳을까. 최 위원장은 “절차가 중요하다. 그래서 2022년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V)의 표준 절차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이게 바로 개발과 보존 갈등의 조정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만든 메커니즘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에 따라서 결정하면 된다. 그 안에서 모든 목소리를 내고 얘기를 하면 된다. 일종의 다성적 플랫폼”이라며 “특히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만큼 세계유산의 보존·관리가 등재만큼 중요하다. 최 위원장은 “관리만 봤을 때 상당히 잘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고 말했다. 다만 “등재만 했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가 떠오르는 건 관광밖에 없다”며 “전국 곳곳에 야간 관람을 하겠다고 해서 빛공해를 만든다. 그러려면 OUV 속성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OUV에 해가 되면 안 된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환류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졌다. 엄격하게 사업을 평가해서 점검하고 예산 투입이 돼야 한다”며 “세계유산 활용과 환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광을 위해 세계유산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단순히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된 문화해설을 통해서 우리 문화를 똑바로 배우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예를 들어 굉장히 많은 중국 가이드가 창덕궁에 와서 중국 자금성의 조그마한 정각 정도 크기밖에 안 된다고 한다. 명백한 비하 발언”이라며 “창덕궁에서 해설을 못하도록 하고 해설 시스템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계유산의 공식적인 목소리로 해설을 할 수 있는 경우 물론 예산이 받쳐줘야 하지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공식적인 자격증을 발급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최 위원장은 “영국은 문화유산 해설사가 배지를 달고 다닌다. 박사 학위를 갖는 것보다 배지를 다는 게 더 힘들다. 일본도 세계유산 해설사 배지를 가진 사람이 해설을 한다. 그것도 국가시험을 봐야 한다. 우리도 그런 권위를 만들어 줘야 한다. K-컬처가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권위성을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하면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성도 올라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은 사도광산이 2024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 정보를 반영할 것을 권고받았지만 지난해 말 제출한 이행보고서에 따르면 비판 지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보고서 어디에도 사도광산 전체 역사의 핵심인 강제동원 역사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이 없었으며 전시실과 안내판에도 강제동원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내용은 없는 상태라 분노를 불렀다.

 

최 위원장은 “정말 화가 나지만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라는 건 세계유산과는 관계없는 감정적 호소다. 과거를 인정하기 위해 ‘온전한 역사’를 언급하라고 우리가 요구했지만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강제동원의 역사를 포함 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올해 고대 유적인 아스카·후지와라 궁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최 위원장은 “등재 신청서에는 한반도의 교류가 있는데 막상 현장에는 한반도 교류사가 없다. 등재 신청서와 현장의 해석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유산 해석에서 이해당사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다성적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상대는 상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 사진=지동현 기자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연구실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 사진=지동현 기자

 

◆7월 부산서 세계유산위…평화 구축 전환점 기대

 

오는 7월 부산에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제48차 회의까지 오는 동안 국내에서 단 한 번도 회의가 열린 적은 없었다. 정부는 평화와 화해, 협력 의지 등을 큰 틀에서 담은 국제선언문을 채택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최 위원장은 “한국 위상이 그만큼이나 올라간 것이고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고 남다른 감회를 드러냈다. 제2의 수도라 부리는 부산에서 열리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 모든 역사의 단계마다 부산이 굉장히 중요했던 지점이었다. UN묘지 등 부산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발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다. 세계유산을 통한 평화 구축 메시지를 내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유네스코를 탈퇴하겠다고 한 상황인데 전 세계 80억 인구가 다채로운 색깔과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어떻게 평화를 구축할 것인지 전환점이자 계기가 되는 게 이번 세계유산위원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미국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 질서 속에서 다자 간 협력의 마지막 보루 유네스코가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굉장히 중요한 국제회의가 바로 부산에서 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위원회 이사를 거쳐 사무총장, 위원장까지 이코모스에서 18년째 활동해 온 최 위원장은 올해가 임기 마지막 해다. 최 위원장이 임기 중 가장 중점을 줬던 과제는 바로 후속 세대 육성과 전문 역량 강화다. 최 위원장은 “이사회 멤버들이 그 이전엔 다 60대 이상이었는데 모두 4050대로 바꿨다”며 “개인 역량에 따라서 가능한 젊은 층으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또 “유네스코 산하 ISC(국제학술위원회)와 1대1 매칭이 되도록 한국위원회 하위 조직으로 NSC(국내학술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NSC 멤버들을 그대로 국제 ISC 멤버로 추천했다”며 “(조직 구성이) 아래서부터 하나씩 올라가게 돼 있고 이런 절차가 있어야 역량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18년을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었는데 앞으로는 내가 했던 작업을 후속 세대가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기를 마친 후 계획에 대해서는 “계속 강연하고 책도 쓰고 그동안 못했던 공부도 하고 싶다”고 귀띔했다. 최근엔 ‘세계유산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의 책도 집필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내가 아직 못 본 것들도 많다. 발굴도 하고 제자 그룹을 중심으로 연구, 집필, 강연 활동을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끝으로 그는 “세계유산은 결국 미래 유산 제도”라고 밝혔다. 구시대 유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모두가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우리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세계유산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유흥이나 오락처럼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볼 수 있다”며 “젊은 세대와 연결되고 다문화 사회로 가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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