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양이가 병원 스트레스가 엄청 심한데, 집 바로 앞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지난 26일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한 주택 앞에 길이 7.4미터, 높이 3.1미터의 대형 밴(승합차)이 떴다. 찾아가는 반려동물 건강검진 플랫폼 ‘펫팅’의 검진 차량이다. 이 밴 안에서 수의사로부터 건강검진을 받은 랙돌 ‘계피’의 집사 선우연정 씨는 “계피가 아플 땐 보통 자차로 20분 거리의 동물병원을 다니는데 이동부터 대기 시간, 진료 시간 내내 너무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건강검진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펫팅 덕분에 5살 묘생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가격도 합리적”이라며 엄지를 세웠다.
이날 부천은 한낮 최고기온도 영하 5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두꺼운 외투도 입지 않고 나타난 선우 씨는 “집에서부터 스무 걸음도 되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계피 역시 딱 그만큼만 이동장 안에 있으면 됐다. 그 바람에(?) 계피의 “야옹”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검진차는 다음 예약 고객의 집 앞을 향해 이동했다.
◆국내 유일 ‘펫 이동검진 차량’… 다양한 전문기기에 세심 보조기구
글로벌 운송차량 제조사(이탈리아 IVECO)의 차량을 개조한 이 검진차는 웅장한 외부만큼이나 안락한 내부도 인상적이었다. 스마트 청진기, 초음파 기계, 혈액검사 원심분리기, 검안경, 검이경, 모니터 등 검진을 위한 다양한 전문기기가 마련돼 60~70가지 검사가 가능하다.
반려동물과 수의사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펫팅만의 접착식 담요, 고양이의 정신 안정을 위한 캣닙 화분, 빛에 민감한 반려동물을 위해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 계절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온열매트와 에어컨 등 세심한 보조 물품도 인상적이었다. 국제고양이의학협회의 고양이친화병원 인증패가 걸려 있을 만 했다.
검진차를 여러 번 경험한 협력 수의사도 “장비가 충분히 구비돼 있고, 반려견과 반려묘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김승우 펠즈(Felz) 대표는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은 국내 유일한 반려동물 이동검진 차량”이라며 “수의사의 행동반경을 고려해 내부 동선을 짰다. 웬만한 동물병원보다 잘 준비된 공간이라 자부한다”고 말했다. 펠즈는 펫팅을 운영하는 반려동물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며, 사명은 독일어로 ‘털뭉치’를 뜻한다.
◆“건강검진 중요한데… 병원 무서운 반려견 보며 아이디어”
김 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대 창업지원 사업을 통해 설립한 펠즈는 올해 본격적으로 일을 벌였다. 앞서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규제샌드박스 아래 지난 6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반려동물 건강검진 차량을 완성하며 펫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범 반년 만에 350건의 건강검진을 진행했으며, 1만5000마리가 넘는 반려견과 반려묘가 예약 후 검진을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는 예방의학 전공자로, 앞서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지사에서 전문의약품 연구개발(R&D) 업무를 수행했다.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품은 그는 반려견 6마리와 함께하는 반려인이기도 하다. 아파도 사람말로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반려동물이기에 건강검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위해 동물병원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김 대표는 “특히 첫째 강아지가 병원 트라우마가 있어서 덜덜 떨고 침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과거 반려묘도 돌본 적이 있는데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부터 큰 스트레스”라며 “반려동물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건강검진을 포기하는 반려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견·다묘 가정은 더 그렇다. 그런 고민 속에 찾아가는 건강검진 서비스를 떠올렸다”고 밝혔다.
◆집 앞에서 20분이면 검진 끝… 맞춤형 결과 리포트 ‘눈길’
반려동물을 의미하는 펫(PET)에 진행형 어미 ‘ING’을 붙인 펫팅은 고객이 검진을 신청하고 해당 지역의 신청자(검진 동물)가 일정 숫자 모이면 지정된 날짜에 검진차량이 찾아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해당 지역의 연계 동물병원 수의사와 수의테크니션이 함께 검진차량에 탑승해 신청자의 집 앞 혹은 가장 가까운 주차장에서 대기한다. 고객이 찾아오면 별도의 대기시간 없이 20~30분 동안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간단한 상담을 한 뒤 2주 뒤 검진결과 리포트가 고객에게 전달된다.
최환 펠즈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해당 지역에 반려동물 6마리가 모이면 일정을 잡는 게 보통이다. 다견·다묘가정의 경우에는 다른 신청자들이 없어도 되는 경우도 있다”며 “서비스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반려동물 커뮤니티에서 ‘펫팅 멤버를 구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고 말했다.
맞춤형 검진 리포트도 펫팅의 자부심이다. 검진 결과와 담당 수의사의 견해를 반려인이 이해하기 쉽게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반려동물을 어떤 식으로 케어를 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협업 수의사진에 구하는 자문과 회사 소속 수의사의 최종 검수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했다.
◆“질병 조기발견 가장 뿌듯해… 동물 예방의학 발전 목표”
펫팅은 동물의료계의 ‘0차 진료’ 발전을 이끌고 있다. 최 CMO는 “반려동물이 동물병원만 다녀오면 혈변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해서 2년간 건강검진을 미뤘는데 펫팅 덕분에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는 고객이 기억에 남는다”며 “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에 확인, 곧바로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는 사례를 접할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본사를 둔 펫팅은 서울은 물론 평택, 안성 등 경기 남부 지역까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서비스 확장을 꾀하는 가운데 다음달에는 대구 일정도 잡혔다. 현재 1대를 운용 중인 검진차도 내년 초 운행을 목표로 추가 검진차량을 제작 중이다. 다만 김 대표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고객은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협업 동물병원 등 현실적 제약으로 모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1인 스타트업 설립해 올초 3명이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 펫팅은 현재 11명까지 인력 규모가 늘었다. 회사가 커질수록 동물 예방의학의 발전이라는 김 대표의 큰 꿈도 영글어간다. 그는 “인의학의 경우 건강검진 데이터를 통해 미리 질병을 예측하는 모델이 활용 중인데, 수의학도 그렇게 발전해야 한다”며 그 시작점이 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직원 복지에도 잊지 않는다. 김 대표는 “대부분 반려인이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반려동물과 동반 출근을 할 수 있도록 했다”며 “앞으로 반려동물 검진 및 진료비용 지원 등 복지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 반려다움 손잡고 펫 영양제 ‘검증 및 추천’
펫팅은 펫푸드 및 반려동물 영양제 업체 및 브랜드와 협업도 진행 중이다. 농심의 펫 영양제 사내벤처 ‘반려다움’과의 동행이 대표적. 펫팅의 건강검진 결과에 따라 반려다움의 영양제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추천하는 식이다. 해당 영양제를 섭취한 뒤 개선 효과를 입증하며 상생이 가능하다. 양측은 이달 초 열린 고양이 전문 박람회 ‘궁디팡팡 캣페스타’에서도 공동 부스를 운영했다. 당시에도 펫팅의 검진차량은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펫팅 관계자는 “박람회 참가 후 고양이 보호자의 신청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밖에 펫푸드 업체와 기능성 사료 및 처방식 부문에서 손을 잡은 펫팅은 반려견 유치원 등과의 협업도 기획하고 있다.
부천·고양=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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