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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밴드왜건 시대의 종말

입력 : 2025-07-21 07:00:00 수정 : 2025-07-20 2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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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최신 인기 급상승 동영상 1, 2위(20일 오후 23시 기준) 화면 캡처.

 14일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측에서 ‘인기 급상승 동영상’ 페이지를 21일부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측은 “다양한 팬덤과 커뮤니티 중심으로 트렌드가 세분된 지금 단일 인기 영상 목록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인급동 페이지를 없애고 카테고리별 인기 차트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인급동을 처음 도입했을 당시에는 모두가 주목한 바이럴 영상 몇 개로도 ‘지금 당장 인기 있는 영상’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었지만 현재는 각기 다른 팬덤이 만든 영상과 마이크로 트렌드가 플랫폼 전반에 퍼지고 있고 특히 최근 5년 동안 인급동 페이지 방문자 수가 크게 줄었다”고도 밝혔다.

 

 한 마디로 ‘밴드왜건의 시대’가 끝났단 얘기다. 이를 두고 한 언론미디어에선 ‘공통 경험의 종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두루 인기라 하면 나도 함께 따라가고파 하는 밴드왜건 시대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춘 ‘알고리즘의 시대’란 것이다. 곱씹어볼수록 문화시장과 문화산업 전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만한 일대 변곡점이 맞다.

 

 한편, 이런 변곡점에서 새롭게 떠오른 문화 부문도 존재한다. 소위 ‘덕후 영역’이라 불리던 서브컬쳐 부문이다. 서브컬쳐 콘텐츠가 이제 대세로 떠올라 기존 대중상품을 대체했단 뜻이 아니다. 저 ‘대세’란 개념 자체가 와해하고 이제 모두가 다 뭔가의 ‘덕후’가 돼가고 있단 의미다. 이 같은 글로벌 현상을 다룬 일본 겐다이비지니스 2024년 11월22일자 기사 ’‘전차남’ 탄생으로부터 20년, ‘아키하바라의 ‘끝난 콘텐츠화가 멈추지 않는 매우 공허한 이유’를 보자.

 

 기사는 ‘오타쿠의 거리’ 도쿄 아키하바라가 무개성의 상업지구로 변해가는 현실을 묘사하면서 “(20년 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 그림이 곳곳에 넘쳐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아키하바라에 가면 저 그림들에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기에 오타쿠들은 고양감을 느낀 것”이라며 “지금 애니메이션 굿즈는 편의점에도 당연히 놓여있고 100엔 샵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시즈오카현의 누마즈시처럼 애니메이션 무대가 된 지방 도시는 캐릭터 그림들로 넘쳐난다. 오타쿠 문화가 니치한 것이 아니게 된 것도 아키하바라의 존재감이 저하되는 요인일 것”이라 분석했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을 낀 지난 5년간 갖가지 서브컬쳐 상품들이 그야말로 편의점에도 당연히 놓여있는 수준 주류문화 일부로서 편입되다 보니 주류문화 폭 자체가 크게 넓어지고, 어떤 의미에선 주류문화란 개념 자체가 와해해 모든 것이 서브컬쳐화 되다시피 했단 얘기. 그렇게 훨씬 다양한 품목의 진열대가 대중시장에 동등하게 비치되면서 밴드왜건에 기댄 대중 트렌드 시대도 마무리됐단 순서다. 과연 ’공통 경험의 종말’이 맞다. 이제 뭇사람들 간 같은 TV드라마나 음악, 영화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대는 끝나간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특히 한국 경우가 그렇다. 한국 대중문화산업은 사실상 저 밴드왜건이 시장 여기저기서 일어나 산업 동력을 키워온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영화 부문이 있다. 팬데믹 직전까지만 해도 ‘1000만 영화’, 즉 인구의 5분의 1 이상 본 영화가 1년에도 2~3편씩 등장하며 세계 영화시장 규모 4위까지 끌어올렸다. 자세히 살펴보면,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1000만 영화는 총 33편이 나왔고, 그중 인구의 4분의 1이 본 영화는 해당연도 인구 대비 총 12편으로 기록됐지만, 같은 기간 한국만큼이나 1인당 영화 관람 횟수가 높은 북미(미국+캐나다)에서 인구 4분의 1이 본 영화는 단 3편뿐이었다. 한국은 과연 ‘밴드왜건에 의해 끌어올려진 시장’이 맞았단 얘기다.

 

 음악이나 TV드라마, 출판시장 등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유난히 ‘되는 콘텐트만 잘 되는’ 시장, 시장 저변이 활성화되진 않는 문화시장으로 알려져 왔다. ‘대박’ 아니면 ‘쪽박’ 시장이다. 2010년대에 시청률 30% 이상 TV드라마는 7편이 나와 일본의 배 이상이지만, 일본선 찾아보기 힘든 시청률 1% 미만 지상파 TV드라마들도 한국선 매년 수두룩 쏟아져나온다. 음악시장도 일종의 블록버스터 상품이라 볼 수 있는 아이돌 부문만 활황세일 뿐 저변 장르 시장들은 늘 고전 중이다. 출판계 양극화 현상 역시 거론되기 시작한 게 20년 가깝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한국 대중문화시장은 바로 이런 한국 대중 속성 탓에 파죽지세로 성장할 수 있었단 점이다. 저 ‘되는 콘텐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몰려가면 ‘안 되는 콘텐트’가 남긴 불안 요소를 모두 만회하고 오히려 그를 완전히 덮어버릴 만큼 시장이 커지니, 한껏 부풀어 오른 시장에서 산업 규모를 키우고 산업적 체계화 단계까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단 것. 이런 분위기에서 유튜브조차 ‘인기 급상승 동영상’ 페이지를 폐지할 만큼 ‘공통 경험의 종말’ ‘밴드왜건 시대의 종말’ 국면에 접어든다면 과연 어떤 대격변이 벌어지게 될까 말이다.

 

 어쩌면 이대로 더 낮아진 수익 수치 기준으로 산업을 재편해야만 할 수도 있다. 올해 극장가만 해도, 한 해 절반을 넘어선 시점이지만 ‘1000만 영화’는커녕 400만 영화조차 나오지 않고 ‘고만고만하게’ 관객을 나눠 갖는 실정이다. 대중음악계에선 이런 현상이 음원플랫폼 중심으로 수년 전부터 포착되고 있었다. 대표적 플랫폼 멜론의 떨어져 가는 MAU를 감안하고라도 단일 곡 이용자 수는 계속 폭락하고 있었다. 차트 1위 히트곡들까지 말이다. 이제 리스너들이 ‘차트대로’ 음악을 듣지 않고 각자 취향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뉴노멀’이라 봐야 하니 그에 산업이 적응해야 한다는 게 상식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맞는 방향일까. 지나치게 방어적인 입장은 아닐까.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대중은 이제 어느 한 곳으로 모여들지 않고 점점 더 흩어지리란 전망이다. 비단 문화계만의 일도 아니란 점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럼 ‘대박’ 콘텐츠 기준으로 규모와 투자를 키워온 산업은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어쩌면 ‘팬덤형’, 또는 그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라이트팬덤형’ 노선을 개발해 수익성을 제고해야 할지 모른다. 해외시장 개척도 돌파구 중 하나고, 그밖에 다른 발상들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모르긴 몰라도, 저 ‘큰 방향’ 자체는 이제 해석의 영역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란 점을 인지해야 한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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