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이 거기 있기에(Because it is there).”
영국의 세계적인 등반가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 등정의 이유를 묻자, 이 한마디를 남겼다. 도전을 앞둔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KT의 수호신 박영현도 넘어야 할 산을 바라보며 후반기 각오를 되새긴다. 올 시즌 40세이브 달성과 함께 구단의 새역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다.
올해로 4년째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2022년 데뷔 시즌부터 셋업맨으로 시작, 이듬해 32홀드를 마크하며 KT 구단 단일시즌 최다 홀드 기록을 써냈다. 지난해부터는 마무리로 보직을 옮겼고, 두 시즌 연속 연착륙하는 모양새다.
특히 올 시즌 전반기에만 43경기 등판, 1승4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60(45이닝 13자책점)을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10개 구단 마무리 중 가장 많은 세이브를 올려 이 부분 최상단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시즌 개막 전 박영현이 그려둔 목표는 30세이브였다. 전년도 기록(25개)에서 한층 더 나아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후반기 시작 전부터 이미 26세이브를 채웠다. 자연스레 눈높이도 높아졌다. 그는 “이번 전반기에 26세이브를 수확했으니, 후반기를 더 잘 준비해서 구단 최다 기록과 40세이브까지 노려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때 선배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던 막내 투수는 이제 같은 자리에 서서 그 숫자를 뛰어넘으려 한다. KT의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은 김재윤(현 삼성)이 2022년 작성한 33개다. 전반기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산술적으로 42개까지도 넘볼 수 있다.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팀의 버팀목이다. KT는 전반기 45승3무41패를 거둬 가을야구 턱걸이에 있는 5위에 자리했다. 이 가운데 박영현의 헌신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올 시즌 멀티이닝 소화만 10경기다. 특히 마무리 투수가 한 경기에 구원 등판해 아웃카운트 4개 이상 책임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심지어 매 경기 등판 난이도 역시 극한이다. 등판 상황의 중요도를 나타내는 평균 레버리지 인덱스(gmLI)가 올 시즌 2.06으로 리그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체력 우려가 늘 따라붙지만, 선수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대신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힘들다거나, 너무 많이 던진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운을 뗀 박영현은 “내 역할은 9회를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 선배님들과 형들이 중간에서 힘을 낼 수 있다. 후반기에는 (손)동현이 형도 돌아온다. 불펜에 더 큰 활력이 돌 것”이라고 미소 지었다.
기술적으로도 원숙함을 더해간다. 시즌 중반부터 느껴졌던 하체 밸런스 흔들림을 인지하고, 제춘모 투수코치와 함께 세밀한 교정을 진행해왔다. 박영현은 “제 코치님은 신인 때부터 저를 계속 지켜봐주신 분이고, 나는 코치님을 200% 신뢰한다. 공이 안 좋을 때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함께 얘기하고, 같이 풀어간다”고 했다.
쉴 틈 없이 구슬땀을 흘린다. 스스로 올스타 브레이크 휴식도 최소화했을 정도다. 그는 “(공을 던지는) 감각이 제일 중요하다. 오래 쉬면 무뎌진다. 실전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장 17일부터 정규리그 일정이 재개된다. 새 목표를 세운 박영현이 후반기 들어 어떤 기록을 써 내려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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