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라이프

검색

[냥집사 박기자가 간다] 실험실에서 구조된 비글… ‘진짜 이름’ 붙여줄 가족 찾아요

입력 : 2025-06-29 08:00:00 수정 : 2025-06-30 09:20:13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실험용 비글로 지내다 구조돼 28일 입양제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찾은 십멍이. 박재림 기자

 

2022년 1월 태어난 비글 견종 강아지에겐 3년 넘게 이름이 없었다. 귀 안쪽에 새겨진 ‘8886484’라는 일련번호가 있었을 뿐. 실험견이었던 이 강아지는 매주 월요일마다 차가운 실험실로 끌려 다녀야 했다. 그러다 최근 구조되면서 견생 처음으로 산책이라는 것을 해보고 임시지만 이름도 생겼다. 지난 28일 서울 중구 명동아트브리즈 5층에서 열린 제1회 실험비글 입양제에 나선 ‘팔멍’이의 사연이다.

 

비글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비행기’로 명명된 이번 행사는 동물구조보호단체인 비글구조네트워크가 명동아트브리즈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2015년부터 실험비글과 유기견 등을 구조해 충남 논산·보은 보호소에서 돌보며 입양을 보내는 단체다. 올해 4~6월에도 팔멍이를 포함한 실험비글 33마리를 구조했다.

 

실험용 비글로 지내다 구조된 강아지의 귀에 새겨진 일련번호. 박재림 기자

 

김세현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대학병원, 제약회사, 화학회사 등에서 그들이 실험용으로 쓰던 비글을 최소한의 정보와 함께 우리 단체로 보내면 보호를 하는 방식”이라며 “입양은 대부분 해외입양인 것이 현실이다. 국내 보호자들이 실험비글 구조견을 직접 만나는 자리가 필요했다”고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날을 위해 논산보호소에서 지내던 팔멍, 구멍, 십멍, 이동, 오군이도 함께 상경했다.

 

약 50명이 모인 가운데 방문객들은 비글들과 직접 교감하며 정을 쌓았다. 아버지와 함께 왔다는 9살 안현중 군은 “강아지를 꼭 키우고 싶어서 구경 왔다. 너무 귀엽다. 간식을 주면 잘 먹어서 신기하다”며 웃었다. 현중 군의 아버지도 “아이가 너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한다. 오늘 당장은 아니어도 추후 입양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실험비글 입양제에 참가한 안현중 군이 비글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박재림 기자
28일 실험비글 입양제에서 관계자들이 비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재림 기자

 

현장에서는 구조된 비글이 실험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도 상영됐다. 아울러 반려견 행동 교정사 허준 마인드마인드독트레이닝 대표의 강연이 펼쳐졌다. 실제 반려견을 입양했을 때 훈련법, 강아지와 입양인이 빠르게 서로에게 적응하는 팁 등을 소개했다.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맞춤형 상담이 이어졌다. 또한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 캘리그래피로 유명한 박병철 작가가 재능기부로 참가자들의 반려동물 이름 캘리를 선물했다. 박채연 포토그래퍼는 사진 촬영 봉사로 온기를 나눴다.

 

특별한 후원도 눈에 띄었다. 매트리스 및 침대 전문업체 시몬스가 최근 출시한 반려동물 전용 매트리스 N32 쪼꼬미를 제공했다. 비글들은 푹신한 쪼꼬미 위에 누워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시몬스는 또한 입양제를 통해 새 가족이 된 입양인과 비글을 위해 쪼꼬미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고 에코백과 이너백으로 유명한 앙레베는 입양가족을 위한 반려견 산책 가방과 파우치를 협찬한다. 반려동물 영양제 브랜드 불로견생은 현장에서 관절영양제 달리개를 증정했다.

 

실험비글 입양제 참가자들이 반려견 행동 교정사 허준 마인드마인드독트레이닝 대표의 강연을 듣고 있다. 박재림 기자
실험비글 입양제에서 십멍이가 시몬스의 펫 전용 매트리스 N32 쪼꼬미에 누워 있다. 박재림 기자

 

주최 측은 현장에서 입양 상담 외에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고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와 브랜드를 소개하고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서명 운동도 진행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강소영 서울디지털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와 최인후 명동아트브리즈 공간 컨설팅 사외이사는 “단순히 동물과 사람의 만남의 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초보 입양인이 실질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며 “앞으로 1~2개월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교보문고 현판 캘리그래피로 유명한 박병철 작가가 실험비글 입양제에서 참가자들의 반려동물 이름 캘리를 하고 있다. 박재림 기자

 

이날 입양제를 통해 십멍이는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입양을 전제로 한 3개월 임시보호를 결정한 이현정 씨는 “15~16년을 함께한 반려견들을 올해 초에 떠나보냈다. 직접 만나본 십멍이가 너무 착하고 예뻐서 결심을 했다”며 “임보 기간 동안은 임시 이름을 써야한다고 해서 3개월 뒤 최종 입양이 되면 예쁜 이름을 붙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씨 집에서 입양을 전제로 한 임시보호를 시작한 십멍이. 이현정 씨 제공

 

팔멍이도 임보처를 찾았다. 팔멍이를 품은 이진아 씨는 “2년 전 입양한 리카도 실험비글”이라며 “앞서도 임보 경험이 다섯 번 있다. 팔멍이가 좋은 입양처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실험비글 입양제에서 참가자가 비글과 교감하고 있다. 박재림 기자 
실험비글 입양제에 나선 비글들. 박재림 기자

 

◆비글이 악마견? 보호자 성향 차이일 뿐!

 

유명 캐릭터 스누피의 모델인 비글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반려견종이다. 사람을 좋아해 순종적이고, 유전적으로 건강하며, 다른 개와 싸움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같은 특징으로 인해 대표적인 실험동물이 되고 말았다.

 

비글구조네트워크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실험비글은 중국서 사왔거나 국내 실험실에서 태어나 평생을 실험용으로 쓰이다 대부분 안락사 된다. 매년 1만5000마리 이상이 안락사 되며, 구조 되는 경우는 전체의 0.01%도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평생 켄넬과 실험실만 오가며 산책, 사회화 훈련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구조된 직후 태어나서 처음 보는 흙 땅이 낯설어 이동장에서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실험비글이 상당수라고 한다.

 

실험비글 입양제 ‘비행기’ 포스터.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이날 현장에서 만난 비글들도 다들 순하고 4시간 동안 한 번도 짖지도 않았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실험실에서 그렇게 훈련 받았기 때문이라고 비글구조네트워크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날 강연에 나섰던 허준 반려견 행동 교정사는 “비글은 보통 에너지 레벨이 높은 편인데 오늘 친구들은 다들 얌전한 편인 것 같다”며 “비글이 한국에선 ‘3대 악마견’ 중 하나로 불리는데 소위 집돌이 집순이 보호자에겐 그럴 수 있지만 캠핑을 좋아하고 산책을 즐기는 보호자에겐 야외활동을 같이 즐기는 천사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회원인 권윤미 씨는 “8년째 비글 몽글이를 아파트에서 반려 중인데 이웃에게 항의 한 번 들은 적이 없다. 짖음도 없고 사람을 너무 잘 따른다. 반려견으로 입양을 추천드린다”고 말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