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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50주년 ‘죠스’의 의미

입력 : 2025-06-23 06:00:00 수정 : 2025-07-07 13: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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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作 영화 '죠스' 포스터.

 지난 20일(현지시간)은 미국 영화산업에서 특별한 날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75년 작 ‘죠스’가 북미 전역에서 개봉한 날, 즉 ‘죠스 50주년 기념일’이었기 때문. 미국선 이미 올해 초부터 50주년 기념 블루레이 발매 및 각종 기념 굿즈 판매에 들어갔고, 지상파방송 NBC에선 스필버그가 직접 출연하는 관련 다큐멘터리도 방영 예정이다. 이외에도 많다. 극장 재개봉 일정은 물론 영화팬들이 주최하는 릴레이 상영이나 각종 전시 행사 등등 끝도 없다.

 

 왜 ‘죠스’가 그리도 중요한 걸까. 어떤 특성과 위치를 지닌 영화이기에 그보다 인기 있었거나 영화사적으로 중요하다 여겨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부’ 등에서도 벌어지지 않던 ‘과거 개봉일에 맞춘 기념행사’까지 열리고 주류 미디어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걸까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 핵심적 이유는 저 특이한 ‘개봉일 기념행사’에 있다. ‘죠스’는 미국, 아니 세계 영화사에서도 이른바 ‘블록버스터의 효시’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블록버스터’의 정확한 의미는 또 뭘까. 일반적으론 큰 파이의 대중 소비자들을 노리고 많은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낸 즐길 거리, 즉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패턴의 모험적 대중상품 정도로 이해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은 ‘죠스’가 등장하기 수십 년 전부터도 이미 존재했다. ‘십계’ ‘벤허’ 등 바이블 에픽부터 ‘콰이강의 다리’ ‘나바론 요새’ 등 전쟁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 ‘포세이돈 어드벤처’ ‘타워링’ 등 재난영화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유행하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대중영화들이 즐비했다.

 

 ‘블록버스터’란 새 명칭으로 등장한 영화들은 그런 게 아니라, 엄밀히 배급 방식 차이 탓에 그렇게 불렸다. 북미지역서 1970년대 초반까지 영화들은 그 배급 및 상영에 있어 ‘로드쇼’ 방식을 취했다. 특정 대도시 상영을 시작으로 마치 순회공연 돌 듯 여타 지역들을 차례로 돌며 상영하는 방식. 이러면 전국 동시배급에 필요한 수 천벌의 필름 프린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데다, 이미 대도시에서 그 상업적 가능성을 검증받기에 소위 ‘안 될 영화’들은 여타 지역으로 배급이 제한되면서 배급 비용 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니 영화 등장 전까지 흥행사업 중심이던 서커스나 연극 등 공연예술 사업방식에서 굳이 벗어날 이유를 못 찾았던 셈이다.

 

 그러다 분위기가 바뀐 게 1970년대 중반 무렵. 갑자기 전국 동시배급이 시장에 속속 적용되기 시작했다. ‘죠스’가 최초는 아니다. 기록상으론 그 1년 전인 1974년, 사회파 당수도(!) 액션영화 ‘빌리 잭’ 속편 ‘빌리 잭의 재판’이 전국 동시배급 최초 사례로 꼽힌다. ‘죠스’는 엄밀히 3번째 전국 동시배급 사례인데, 그럼에도 그를 기반으로 한 ‘블록버스터’ 개념의 효시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있다. 블록버스터 속성 중엔 ‘이벤트 영화’로서의 면면도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전국 동시배급+이벤트 영화’ 개념이 블록버스터 본질이라 볼 만하다.

 

 그럼 ‘이벤트 영화’란 또 뭘까. 말 그대로 특정 영화의 개봉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처럼 여겨지도록 마케팅된 영화를 가리킨다. 제작 단계부터 꾸준히 미디어에 노출하며 기대감을 높여오다 이후 소설이나 만화 등 서적, 음악, 아케이드게임 등 비디오게임 전반, 그 밖에 의류나 도시락통 등 갖가지 관련 굿즈가 일제히 출시되며 전방위 미디어가 총동원된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란 인식을 갖게 한다. ‘죠스’는 2년 뒤 이 같은 전략이 총망라된 ‘스타워즈’가 등장하기 전 이를 시행한 거의 첫 시도로서 기억에 남는단 것이다.

 

 이제 ‘블록버스터’ 출현이 가리키는 영화산업 속성 변화를 돌아보자. 대중 만족도 높은 영화이기만 하면 여유로운 로드쇼로 1년 아니 그 이상까지도 순회하며 장기 상영하던 배급에서 어마어마한 이벤트 전략을 동원해 전국 동시개봉으로 ‘한 방’에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빠르게 개봉을 마치는 ‘치고 빠지기’ 배급으로 바뀌었단 것. 그렇게 영화는 광포한 매스미디어 시대가 낳은 ‘유행산업’의 한 갈래로서 재편됐단 얘기다. 유행 주기를 짧게 재편해 체인식으로 연속 소비시키는 패스트 패션 개념처럼 ‘패스트 무비’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래서 ‘블록버스터’다. 중요한 문화적 이벤트란 인식을 심어주며 그 호기심으로 차오른 트렌드성을 전국 동시배급으로 한꺼번에 작렬시켜 단단한 시장의 벽을 부수고 돌파하는 콘텐츠.

 

 이 같은 블록버스터 열풍이 미국영화산업 체질 자체를 뒤바꿔놓으면서 콘텐츠 내적으로도 변화한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죠스’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대학 영화과에서 공부한 ‘영화과 출신 감독’들 전성시대가 열렸다. 이전까진 연극연출가 중심으로 등용되며 ‘영화감독 역할이란 배우들 연기통제가 핵심’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면, 이후론 대학 영화과에서 촬영이나 편집 등 기술적 측면 위주로 공부해 테크닉을 과시하는 이들이 화려한 볼거리를 추구하는 블록버스터 성질에 더 잘 맞는단 판단으로 등용문이 크게 열린 것. 이런 판단은 1980년대 MTV 등장 후 뮤직비디오나 CF 감독들에 기회가 돌아가는 흐름으로 옮아간다.

 

 한편 배우들 연기에 있어서도 달라진 부분이 많다. 연극 연기와 영화 연기 차이 정도가 아니다. 영화 연기 중에서도 ‘미니멀리즘 연기’란 지점에 대해서다. 예컨대 2020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 배우 25인’엔 덴젤 워싱턴,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 명배우들과 함께 키아누 리브스 이름도 올랐다. 리브스는 오히려 ‘연기 못하는 배우’로 알려진 구석이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그 ‘존재감’을 높이 평가해 리스트에 올렸다. 대사와 내면 탐구가 극히 제한된 블록버스터 속성에서 필요한 연기란 압도적 존재감 자체로 극을 끌어가는 능력이란 점을 고려한 평가다. 블록버스터의 미니멀리즘 연기도 연기 일종으로 평가받기에 이른 셈이다.

 

 어찌 됐든 이 모든 변화와 전환의 시작점에 ‘죠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영화 팬들은 물론 언론 미디어에서도 그 50주년 기념행사에 주목하고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획들도 성사시키는 것일 테다. 그런 점에서 과연 한국선 어떤 영화가 이런 역할을 했을까 되돌아보게도 된다. ‘한국영화산업은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오는 1999년 작 ‘쉬리’를 돌아보는 게 먼저 아닐까. 그렇게 영화산업의 변곡점들을 되짚어보는 ‘산업사’ 측면도 분명 콘텐츠 자체의 의미와 영향을 되짚어보는 영화사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가치 있는 법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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