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만 있으면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부분이 후반에 잘 풀린 것 같다.”
나무 밑에서 고심했던 남자,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했다. 벗어난 티샷에 그린으로 볼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은 딱 하나. 그곳으로 기가 막힌 트러블 샷을 날린다. 볼은 홀컵에서 약 15m 떨어진 프린지에 안착했고, 결국 파로 막았다. ‘슬골생(슬기로운 골퍼생활)’ 김백준이 슬기롭게 위기에서 벗어나며 우승 경쟁을 이어간다.
김백준은 15일 경기도 안산시 더헤븐CC 웨스트-사우스코스(파72, 7293야드)에서 열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2025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3억원) 최종 4라운드에 나선다. 전날 합계 12언더파 공동 5위로 3라운드를 마친 김백준은 이태훈, 오호리 유지로(이상 11언더파 공동 8위)와 함께 24조에 속해 오전 10시45분 4라운드 티오프를 한다.
3라운드는 이번 대회 중 김백준이 가장 많이 흔들렸던 시간이다. 이틀 동안 몰아쳤다. 1라운드에서는 노보기에 버디 4개를 몰아치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고, 2라운드 역시 노보기에 무려 7개의 버디를 쏟아내며 공동 2위로 올라섰다. 우승까지 달려갈 기세였다.
다만 3라운드에서는 1번 홀(파4)부터 흔들렸다. 티샷 미스, 결국 더블보기로 마쳤다. 촘촘하게 나열된 리더보드에서 이름이 아래로 확 내려갔다. 2번 홀(파4)도 마찬가지였다. 티샷 미스가 나왔다. 다행히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지만, 홀과 홀 경계의 나무가 늘어선 곳에 떨어졌다.

볼 위치를 확인한 김백준은 이리저리 방향을 살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 싶더니, 이내 나무 아래서 손을 감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날 경기 후 만난 김백준은 이 상황에 대해 “(1번 홀에 이어 2번 홀까지 티샷 미스가 나오면서 화가 굉장히 많이 났다”며 “솔직히 톱만 있으면 거기 있는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내 “최대한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며 “계속 ‘괜찮다, 괜찮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고 설명했다.
무너지지 않았다. 그린을 향해 날린 트러블 샷은 프린지에 떨어졌다. 성큼성큼 볼로 다가간 김백준은 2번의 퍼트로 파를 기록했다.
물론 3번 홀(파4)에서도 스리 퍼트로 보기를 기록했다. 초반 3개 홀에서 3타나 잃은 셈이다. 김백준은 “(멘털적으로)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했다”며 “1, 2라운드에서 보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 나와야 할 보기가 지금 나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계속 괜찮다고 되뇌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컨트롤했기 때문에 후반 잘 풀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평정심을 되찾은 김백준은 이후 안정적인 플레이로 잃었던 타수를 회복했고, 이어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1언더파로 3라운드를 마쳤다. 프로 2년차답지 않은 ‘슬기로운 골퍼생활’이었다. 김백준은 “1, 2라운드 샷 감각이 너무 좋았다. 그런 부분이 과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템포도 빨라지고, 긴장까지 하면서 흔들렸다”며 “그래도 후반 들어서면서 스스로 템포를 찾았고, 플레이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선두와는 4타 차. 추격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또 추격하지 못할 스코어는 아니다. 충분히 우승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위치다. 그는 “오늘 후반처럼만 치면 좋겠다”고 눈빛을 번뜩이며 골프장을 떠났다.
안산(경기)=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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