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낯설고, 때로는 위험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오늘날 소셜미디어(SNS)와 팬 소통 플랫폼의 발달로 연예인과 대중 간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면서 일부 연예인들은 더 이상 침묵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누구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민주 사회 속에서 개인적인 소신을 드러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배우 이동욱은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한 뒤 팬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소신 발언을 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너희들아, 늘 얘기하지만 투표는 최악을 막는 거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택하고, 차선이 없다면 차악을 택해서 최악을 막는 거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상적인 선택지가 없을 때조차도 투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정치적 현안에 대해 일정한 태도를 보여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한 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밝힌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에는 “이제야 봄이다. 겨울이 너무 길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SNS 등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공유하는 연예인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연예인의 정치적인 목소리에 민감하다. 래퍼 빈지노는 대선을 앞두고 SNS에 세계 뻘건디의 날이라는 말과 함께 빨간 옷을 입고 육아를 하는 모습을 올렸다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단순히 좋아요를 누른 배우 이동휘마저 그 불똥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빈지노는 게시물을 내리고 대중에게 사과를 했다.
탄핵 정국 당시엔 침묵을 유지하는 연예인들에게 정치적 표현을 강요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일부 팬들은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사 표현을 통한 영향력 확산을 요구했다.
대선철이 되자 일부 스타들은 정치적 색깔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사진을 흑백으로 올리거나 브이(V) 포즈 대신 손가락을 모두 펴는 포즈를 취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러한 자구책을 마련한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현실을 방증한다.
해외는 어떤가. 미국 등지에서는 폴리테이너(정치인+연예인)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연예인의 정치 참여가 일상화돼 있다. 정치 캠페인에 등장하거나 특정 정당과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일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해 미국 대선 때 후보들의 첫 TV 토론을 시청한 뒤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팀에 투표하겠다. 이유는 그가 시민들의 권리와 명분을 위해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스위프트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를 저격하기도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뿐 아니라 가수 비욘세,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많은 스타들이 선거 시즌이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힌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자유로운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물론 일리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비난을 받는 사회는 건강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 모든 발언에 정치적 의미를 덧씌우고, 그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비판과 공격이 뒤따른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 표현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난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공존시킬 수 있는 사회적 성숙함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점이다. 연예인의 소신 표현이 곧 정치적 논란이 되는 현실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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