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고갈·표현 제약에 내리막길
디지털 플랫폼 등장에 추락 가속
#60대 택시기사 김영호씨는 요즘 보면서 시원하게 웃을만한 TV프로그램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1996년 방영됐던 MBC 코미디 프로그램인 오늘은 좋은 날의 허리케인 블루, 울엄마 등을 유튜브를 통해 돌려 보며 손님 없는 무료함을 달랬다.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즐겨봤던 코미디를 그리워하며 당시 따라 했던 유행어들을 떠올리곤 한다.
과거 주말 저녁 안방극장은 온 가족의 웃음으로 들썩였다. 마빡이, 달인, 비둘기 합창단 등 코너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났다. 그러나 지금은 개그를 위한 공개홀은 예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초라해졌고 매주 방송을 기다리던 시청자의 TV 앞 풍경은 사라졌다.
한국 방송사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중의 삶에 밀착한 웃음을 무기로 삼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제작해왔다. 최초의 프로그램은 1969년 8월 MBC 개국 첫 주부터 방송된 웃으면 복이 와요다. 1970년대 TV의 대중화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 시청률은 당시 전화 설문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약 70%까지 나왔다. 그 인기는 이후 오늘은 좋은 날을 비롯해 개그야, KBS 코미디 세상만사, 유머일번지, 개그콘서트, SBS 웃찾사 등을 탄생시켰고, 코미디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다.
당시 공개 코미디는 하나의 문화 코드였다. 매주 새로운 코너가 등장해 유행어를 만들어냈고, 사회적 이슈를 풍자하며 시대를 반영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지금의 예능 스페셜리스트 모두 이러한 무대를 통해 대중 앞에 섰다.
영향력은 대단했다. 개그콘서트의 경우, 2003년 8월31일(200회 특집) 방송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 35.3%를 기록했고, 당시 프로그램의 수장 역할을 했던 박준형은 그해 KBS 연예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본방송 기준 회당 6억원 정도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 출연하는 80명 정도의 코미디언 총 출연료는 750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년 이후 새 코너의 부재, 정치적 풍자 및 사회적 이슈의 검열, 표현의 제약, 제작진의 기획력 부족 등이 지속적으로 언급됐다. 유행어 중심, 반복적인 캐릭터, 예측 가능한 전개가 시청자의 피로도를 유발했으며, 참신한 코너 개발의 실패가 이어졌다. 주요 타깃층인 젊은 세대가 TV를 떠나면서 기존 방송의 영향력이 약화된 점도 영향을 끼쳤다.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나타난 공통된 위기였다. 결국 하나둘 종영했고, 2020년까지 여러 차례 방송 시간을 변경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던 개그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수십 년간 한국 대중문화를 지탱해온 공개 코미디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2025년 현재 명맥을 이으며 분투 중인 프로그램이 있으나 공개 코미디가 지닌 고유의 형식과 생동감,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력은 잊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코미디언들은 방송 무대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 속에서 형태를 바꿔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겸 중원대학교 사회과학과 특임교수는 “그럼에도 K-한류 열풍 덕에 한국 코미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올드하더라도 ‘한국 코미디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콘텐츠로 어필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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