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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의 눈] 후보 이름이 아닌 공약은 기억하는가

입력 : 2025-06-01 16:36:38 수정 : 2025-06-01 16: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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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물어보는 말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음 유력 대선 후보 중에 후보의 대표 공약을 하나씩만 이야기해봐.”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선뜻 손을 들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 이번 대선, 공약은 더더욱 모르겠다.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키워드만 나열해보자. 여성비하 발언, 가짜 뉴스, 딥페이크 영상, 고소·무고 논란까지. 후보를 알아보려는 유권자보다 서로를 고발하고 비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대선이다. 갑자기 네거티브 판이 됐다.

 

정책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진 않다. 호텔 경제학이라는 생소한 개념부터 공무원 감축, 노동 유연화, AI 주권국가, 주 4일제 같은 파격적인 근무제도까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들인데, 정작 이게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설명이 없다. 개인 신상 논란도 빠지지 않는다. 가족 리스크라는 말이 이제는 대선 사전처럼 따라붙는다. 후보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 대선 쟁점이 되는 시대다. 대선판이 정책 대결이 아니라 스캔들과 이미지 게임이 된 지 오래다. 마치 인터넷 실시간검색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공약은 있는데 들리지 않는다. 보여주긴 하는데 읽히지 않는다. 그 많은 후보 중 누구 하나 “나는 월세 사는 사람을 위해 세금을 줄이겠습니다”라고, 딱 한 줄로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대신 공약집을 PDF로 375페이지나 보내준다. 이걸 누가 보나. 차라리 부동산 중개 앱처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1번 후보 – 전세자금 대출 확대 / 2번 후보 – 공공임대 50만호 공급 / 3번 후보 – 월세 세액공제 강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예전에는 대선이 축제 같았다. 벽보 앞에 삼삼오오 모여 후보 사진을 비교하며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지금은? 그냥 빨리 지나간다. 무슨 쇼핑몰 배너 본 것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치가 멀어진 게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이젠 공약이 선거 당일을 위한 장식품처럼 느껴진다. 당선 후엔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 한마디면 없던 일이 되곤 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공약 대신 ‘희망 사항’이라고 써놓는 게 더 솔직하지 않을까. “하고 싶습니다만, 보장은 못 드립니다”라는 정도로 말이다.

 

결국 이번 대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다. 우리가 누구를 뽑을지보다 그 사람이 뭘 하겠다는 건지를 알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공약은 상관없고, 내가 좋아하는 당에다가만 몰표를 줄 생각인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니, 이제 제발 좀 묻고 따지자.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회에서는 공약도 점점 추상화되고, 책임은 점점 흐려진다. 그러나 우린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은 리더가 아니라 우리의 대리인이다. 그가 무슨 약속을 했는지, 왜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를 끝까지 물어야 한다. 이번 대선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후보의 이름은 기억해도 그의 공약은 기억하는가?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또 한 번 모르는 사람에게 집 열쇠를 맡기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만 허공에 외치는 공약 말고, 내 삶에 들리는 공약 하나쯤은 들어보자. 난 이 공약을 한 후보가 마음에 들어 같이 말이다. 마음에 드는 정책으로 인해 당이 바뀌면 어떻고 사람이 바뀌면 어떤가? 어쩌면 그게 진짜 민주주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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