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롤링 스톤즈는 「Under My Thumb」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곡은 처음엔 혁신적 사운드와 자유를 상징하는 락 넘버로 소비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성에 대한 지배적 시선을 은근히 정당화하는 작품이라는 비판도 함께 따라왔다.
‘Under my thumb, the girl who once had me down…Now she's the sweetest pet in the world.’ 특히 이 가사는 여성에 대한 지배적 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한때 나를 억눌렀던 그녀’를 ‘이제 내 손아귀에 넣었다’는 뉘앙스. 당시에는 락적인 반항으로 소비되었을지 몰라도, 오늘날 이런 메시지는 ‘성역할 고착과 권력구조의 재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어적 유희와 쾌감이 자유로운 락 음악에서도 조심하는 젠더 표현이 2025년 한국 정치판엔 버젓이 등장했다.
지난 TV토론에서 이준석 대통령 후보의 말이 논란이 됐다. 차마 어떤 발언인지 옮길 수는 없지만.
모 후보의 아들이 한 말 (이것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밝혀지진 않은 걸로 안다) 이라며 여성의 부위와 젓가락을 언급한 것이다. 설령 이 발언이 상대 후보의 도덕성을 문제 삼기 위한 것이었다 해도, TV토론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뭘까?
사람 마다 다를 테지만, 어떤 이들은 그의 발언이 시원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성적인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표현이 노골적이었다’는 차원을 넘어서, 공공 언어에서 허용될 수 있는 감수성과 책임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란 생각을 한다.
대선 TV토론은 국민과의 가장 직접적인 접촉 지점이다. 그 언어는 설득을 위한 무기가 아니라 국민 감수성을 반영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모 후보의 발언은 롤링 스톤즈의 가사처럼, ‘내가 상대를 손아귀에 넣었다’는 식의 권력적 언어다. 여성의 신체를 지배한 가사를 담은 「Under My Thumb」의 서사와 어느 부분은 닮아 있다.
물론 그가 여성을 조롱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가사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듯. 그의 언어 표현이 TV토론에 맞게 조금 더 순화된 표현을 써야 한다는 걸 지적한다.
오늘날 록계는 반성하고 있다. 「Under My Thumb」 같은 곡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 아래, 일부 공연에서 제외되거나 해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일부 언어는 여전히 그 지점에 머물러 있다. 여성의 몸, 젠더 감수성, 언어의 공공성… 그 모든 것을 정치의 장에서는 여전히 함부로 소비해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은 시간과 함께 반성한다. 정치의 언어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젓가락’이든 ‘엄지손가락’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를 통해 상대방의 사상을 검증하는 방법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 시켜, 권력을 장악하려는 서사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악보다. 대통령을 꿈꾸는 이의 말은 사적인 분노가 아닌 공적 책임의 언어여야 한다. 그 언어가 멀리 퍼질수록, 그것이 단지 ‘말실수’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音談事設(음담사설): 음악으로 세상 일을 말하다
- 이승훈 작가(시시콜콜 세상 이야기를 음악으로 말하고 싶은 중년의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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