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율이 위기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도 않다. 하지만 정작 그 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모두가 문제를 말하지만 대안에는 선을 긋는다.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난 시도는 아직도 이례적이란 프레임에 갇히곤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로 가득해지고 있다. 그런데 혼자 ‘사는’ 건 되는데, 혼자 ‘낳는’ 건 왜 이렇게 비난을 받는 걸까. 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혼인율은 땅속을 파고들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제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이를 낳기 위한 선결 조건이 아니라는 인식이 슬며시 퍼지고 있다. 그렇게 등장한 흐름이 바로 ‘비혼 출산’이다.
법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에서 혼인 없이 출산하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혼 중심으로 짜인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비혼모에게 불리하다. 가족관계증명서부터 보육 지원, 의료 동의서까지 엄마 혼자라는 이유로 여러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들은 판단부터 하려고 한다.
비혼 출산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보다 육아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혼자가 편하다’, ‘누구의 동의 없이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이야기한다. 이제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감각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스웨덴, 일본 등에서는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는 일이 특별하지 않다. 가족은 더 이상 법적으로 묶인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돌보는 관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애는 엄마, 아빠가 같이 키워야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현재 이혼율은 36%를 넘었고, 한부모 가정은 계속 늘고 있다. 어차피 많은 아이들이 결국 한쪽 부모와 살아간다. 이게 비혼 출산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비혼 출산을 해도 되는가”가 아니라, “혼자 낳아도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 사회인가”로.
혈연 중심의 가족관을 넘어서 사회적 돌봄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다. 인디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는 혼자 낳을 수 있지만 잘 자라게 하려면 진짜로 온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 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일일 수 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등장했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초저출산의 위기다.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기존의 방식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낳느냐보다 아이가 태어나고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이 글의 주제는 비혼 출산이 아니다. 주제는 명확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수단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대는 변했고, 가족의 형태도 변하고 있다. 변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한다.
결혼 없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면, 혼자 낳아도 사회가 함께 키울 수 있다면, 이게 비정상일 이유는 없지 않을까? 결국 지금 필요한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용기다. 출산율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마주한 이상 기존의 기준만 고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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