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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영화계 ‘리퀄’ 성공담

입력 : 2025-05-26 08:04:06 수정 : 2025-05-26 0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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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과 16일, 한국과 북미서 차례로 개봉한 미국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이 화제다. 2000년부터 시작된 호러영화 프랜차이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6편 말이다. 한국은 본래 해외 호러영화 흥행 한계가 뚜렷한 분위기라 예상대로 심심한 반응이지만, 한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특히 본국인 북미 성과가 너무나도 엄청나다. 3523개 스크린에서 개봉, 주말 3일 동안 516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큰 차이로 당당 1위를 차지했다. 해당 프랜차이즈 기존 첫 주말 기록은 2009년 작 4편의 2741만 달러였다. 이를 배 가까운 수치로 경신한 셈이다.

 

 흥미로운 건, 북미 언론미디어는 이 같은 성과도 일종의 트렌드로서 받아들인단 점이다. 한국이 워낙 해외 호러영화, 특히 미국 호러영화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이어서 그렇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라인’과 유사한 성공들은 지난 5~6년 사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처럼 오리지널 등장부터 20년을 넘어서는 오랜 호러영화 프랜차이즈 신작들, ‘스크림’ ‘쏘우’ ‘할로윈’ 등이 일제히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보여주는 추세다. 어쩌면 ‘비틀쥬스 비틀쥬스’나 ‘에이리언: 로물루스’ 성공도 여기 추가시켜야 할지 모른다. 

 

 일단 호러 장르마저 오랜 기간 대중에 명확히 각인된 IP가 더 쉽게 성공한다는, 이른바 ‘IP 천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로 영화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극장 관람이 어색해진 탓도 있지만, 팬데믹과 함께 밀려온 살인적인 물가 상승도 한몫한다. 이런 시점엔 평소 애착을 갖거나 최소 ‘무엇을 보게 될지 이미 알고 있는’ 안전한 선택이 문화소비 중심이 되게 마련이다. 요식업계의 ‘불황 땐 모험적 소비가 줄어 이미 유명 한 식당만 더 잘 되고 나머진 모두 쓰러진다’는 속설과 맞닿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이것만이 연이은 성공 비결인 건 아니다. 파고들면 또 다른 공통점도 보인다. 기존 IP 콘텐츠 중에서도 이른바 ‘리퀄(requel)’ 형식을 취하는 콘텐츠가 유독 성공률이 높다는 것. 리퀄은 ‘리메이크(remake)’와 ‘속편(sequel)’의 합성어다. 2022년 작 ‘스크림’에서 등장인물 대사로 용어가 직접 등장해 퍼져나갔다.

 

 말 그대로 오리지널의 리메이크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인물과 서사가 전편들로부터 이어지는 엄연한 속편이고, 또 속편인 것 같으면서도 그간 프랜차이즈에 대한 오마주 요소가 짙어 리메이크처럼도 여겨지는 형식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바뀐 사회 분위기와 대중정서 등 시대 공기를 담아내 전반적으로 오리지널에 대한 재해석 요소를 집어넣는다.

 

 리퀄의 예는 많다. 대략 2010년대 중반부터 유행이 시작됐기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크 리드’ ‘쥬라기 월드’ 등도 지금은 초기형 리퀄로서 거론된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여기에 넣기도 한다. 모두 오리지널과 배경은 물론 플롯 구조까지 노골적으로 닮아 사실상 리메이크에 가깝단 인상이지만, 인물과 서사는 전편들로부터 명확히 이어지는 속편 형태다. 그리고 신작에 이르러 여성 서사로서 오리지널을 재해석한 ‘매드맥스’와 ‘스타워즈’, 다음 세대의 새로운 고민들을 추적한 ‘크리드’ 등처럼 나름의 재해석을 가한다. 위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 러들 라인’ ‘쏘우 X’ ‘할로윈(‘18)’ ‘스크림(‘22)’ ‘캔디맨(‘21)’ 등도 모두 리퀄로서 분류된다.

 

 사실 여러모로 현시점 ‘말이 되는’ 형식이다. 속편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챙겨 전편 팬들의 애착을 자극하고 봐야 할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사실상 전편의 되새김질에 가까울 정도로 그 감흥도 똑같이 재현해 ‘변화’의 위험성을 최소화시킨단 전략. 어떤 의미에선 속편이나 리메이크, 리부트보다도 소위 ‘머리를 잘 굴린’ 프랜차이즈 형식이라 볼 만하다.

 

 그러나 유행이 너무 거세다 보니 지금은 또 리퀄에 대한 불만이 차오르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호러영화 리퀄들에 대한 불만이 점점 심해진다. 미국 영화사이트 풀서클시네마의 2022년 10월20일자 칼럼 ‘리퀄은 어떻게 호러 영화 리부트와 속편을 망쳐놓았나’도 그중 하나다. 칼럼은 “(‘할로윈’ 리퀄 시리즈는) ‘할로윈 킬즈’와 ‘할로윈 엔드’까지 가면 마이클 마이어스와 로리 스트로드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군중심리와 모방범죄에 대한 사회적 논평이 돼버린다”며 “‘텍사스 전기톱 살인’과 ‘스크림’도 같은 운명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식인종 힐빌리들에 대한 영화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 논하는 건 좋은 효과를 얻지 못한다. 거의 그 살인들에 대한 변명거리를 제공해주는 식”이라며 “한편 ‘스크림’은 (프랜차이즈 주인공들인) 시드니, 듀이, 게일을 들러리 캐릭터들로 만들어버린다. 레거시 캐릭터들을 주인공 삼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그들을 아예 등장시켜선 안 됐다”는 것이다.

 

 결국 리퀄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재해석’ 부분에서 대부분 PC(Political Correctness) 요소에 지나치게 기댄 사회적 논평을 집어넣느라 늘 문제가 생기고, 기존 주인공들을 그저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갈 징검다리 격 도구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 탓에 오히려 환멸감만 일게 된다는 것. 이 같은 불만들에 영화산업이 제대로 응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호러 장르에서만큼은, 리퀄 형식의 유행도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들 수 있겠다.

 

 어찌 됐든 리퀄은 프랜차이즈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한국영화산업 입장에서도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한 형식이다. 위 지적된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형태로 시도된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존 한국영화 히트작들이 몇몇 떠오른다. 어차피 지금의 ‘IP 천하’ 분위기는 최소 극장용 영화산업에서만큼은 쉽사리 꺼질 분위기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극장용 영화산업의 회복 속도가 미국이나 일본보다 한참 더디단 점도 결국 프랜차이즈화 미비의 고질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그 핵심엔 현재 흥하는 리퀄의 가능성을 제대로 실험해본 적 없단 점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른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단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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