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을 찾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매표소 앞에서 어색하게 티켓을 끊고, 버터향 가득한 팝콘을 받아든 채 들어간 상영관. 영화 제목은 ‘킬러들의 수다’(2001) 였다.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극장이라는 공간 준 감정은 또렷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극장은 언제나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 함께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 아직도 혼자 가는 게 가장 편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람들에게서 “극장에 언제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때 데이트 명소이자, 아이들의 방학 필수 코스였던 그곳. 언제부턴가 극장은 보러 가는 곳이 아닌 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관객 수 급감, 콘텐츠 부족, OTT의 급성장, 투자 위축. 이 네 가지 키워드는 지금 한국 극장가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위기는 단지 산업적 침체가 아닌 문화 생태계 전체의 균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극장이 사라지는 건 단지 수요의 문제가 아니다. 공간 기능에 대한 재정의이자, 문화 소비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단순히 사람들이 영화를 덜 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어떻게 보고 어디서 보느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변화 속에서 영화관만이 할 수 있는 역할까지 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영화관은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다. 영화의 창작 생태계 전체가 이 공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극장 수가 줄면 개봉할 영화도 줄고, 투자 역시 위축된다. 볼 영화가 없다는 관객의 체감은 관객 이탈이라는 악순환 구조를 부른다.
또 콘텐츠를 선별하고 집중시키는 필터 역할을 한다. OTT에서는 클릭 한 번으로 수백 편의 영화가 눈앞에 펼쳐지지만, 어떤 것이 이 시기의 대표작인지 알려주는 건 없다. 반면 극장은 시의성과 큐레이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영화가 어떤 규모로, 어떤 포스터와 예고편으로 걸리는지, 그 자체가 영화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영화인들이 창작 활동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현시점 어떤 이야기가 이 사회에서 공유돼야 하는지 보여준다.
의도된 집중과 몰입의 공간이라는 점도 소중하다. 영화관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휴대전화를 끈다. 공연장을 포함해 현대사회에서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몇 없는 공공장소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공동체 공간이라는 점이다. 좋은 영화는 혼자 봐도 울림이 있지만, 누군가와 같이 봤을 때 더 오래 기억된다. 상영 후 흐르는 엔딩 크레딧,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남아 있는 낯선 관객들, 그 정적이 쌓아주는 감정은 집 안 어떤 스크린에서도 구현되지 않는다. 최근 재개봉 붐이나 테마 GV(관객과의 대화)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관은 다시금 함께 감상하는 장치로서의 존재감을 입증 중이다.
요약하자면, 극장은 ‘함께, 온전히’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개인화된 알고리즘, 편리한 디지털 소비로는 대체되지 않는 가치다.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건 영화관이 단지 흥행의 전쟁터가 아니라 문화 기반으로서의 상영 공간이라는 인식이 회복되는 일이다. 우리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논의를 해왔다. 이제는 그 영화를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영화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다. 1020 사이 극장 방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부럽다. 이 좋은 걸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다니. IMAX관부터 침대 뺨치는 푹신한 의자까지 극장은 새로운 관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수다를 떨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 생애 ‘첫 극장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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