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시의 기술자에서 침묵의 공범으로, SK텔레콤을 위한 변명은 없다.
The Police, 《Every Breath You Take》 (1983)
이 노래는 1983년 발표된 스팅의 대표작으로, 겉으로 보기엔 사랑의 감시를 노래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집착과 통제를 담고 있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존재. 낭만적인 감시는 없다. 감시는 언제나 권력이고 위협이다.
그런데 2025년, 우리는 이 곡을 SK텔레콤 해킹 사태의 비극적 역설로 다시 떠올리게 됐다. 고객의 숨결, 위치, 통화 내역, 결제 정보까지 모든 디지털 흔적을 추적할 수 있던 기업. 바로 그들이, 정작 자신들의 책임을 감시하고 책임질 순간에는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다. 이것은 정보 주권의 붕괴, 디지털 사회에서의 생존권 침해, 그리고 기업 신뢰의 총체적 몰락이다. 문제는 단순히 해커의 침입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의 대응, 더 정확히 말하면, ‘‘대응하지 않은 선택’‘에 있다.
해킹 사고는 이미 며칠 전 발생했지만 SK텔레콤은 이를 알고도 공개하지 않았다. 정보를 가장 빠르게 다뤄야 할 통신사가, 가장 늦게 입을 열었다.
그 사이 고객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는 어디론가 흘러갔고, 고객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평소처럼 휴대전화를 들고 출근하고, 통화하고, 송금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이미 파괴된 상태였다.
누군가는 이름과 생년월일이 거래되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신사를 사칭한 피싱에 속절없이 노출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디지털 정체성을 탈취당하고 있었다.
뒤늦게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SK텔레콤 고객센터와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유심칩 교체’라도 해서 보안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곳엔 유심칩이 없었다. 유심칩 부족 사태는 단순한 부품 문제나 물류 문제가 아니다. 핸드폰 먹통, 계좌 인증 불가, 모바일 결제 중단, 이 모든 건 오늘날 현대인의 생존 기반을 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이 내놓은 사과는 알림 문자처럼 건조하고, 홍보 자료처럼 형식적이었다. 사과문에선 진심을 찾기 어려웠다. 공감이 없었고, 책임은 흐릿했다. 국민은 불안했고, SKT는 불편해 보였다.
이쯤 되면 다시 떠오른다. 그 유명한 후렴구의 또 다른 문장. “Every claim you stake, I'll be watching you.” (네가 주장하는 모든 것, 나는 지켜보고 있을 거야.)
그래. 이제는 우리가 지켜볼 차례다.
이제는 국민이 감시자다. 모든 입장문, 모든 보도자료, 모든 회견의 태도. 우리는 그 말들 속에 진심이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국민을 감시당할 데이터 조각으로만 보고 있는지 샅샅이 들여다볼 것이다.
SK텔레콤은 선택해야 한다. 감시의 기술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책임지는 주체로 거듭날 것인가.
이건 단순한 데이터 유출이 아니다. 신뢰의 해체, 관계의 파괴, 그리고 침묵의 폭력이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말할 차례다. 우리가 지켜볼 것이다. Every breath you take 라는 가사처럼.
이승훈 작가(시시콜콜 세상 이야기를 음악으로 말하고 싶은 중년의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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