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치 않게 시작한 게 잘됐네요(웃음).”
등판 전날 다른 팀 선수의 변화구 영상에 시선이 멈췄다. 프로야구 최고 투수 제임스 네일(KIA)의 스위퍼였다. 움켜쥔 그립부터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휘어져 나가는 무브먼트까지, 우완 투수 하영민(키움)은 그 자리에서 ‘이거다’ 싶었다. 단 하루 연습에도 성과는 놀라울 만큼 탁월했다. 실전 등판서 마주한 타자들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하영민은 22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서 열린 두산과의 정규리그 맞대결에 선발 등판, 7이닝 90구를 던져 3피안타 무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그의 투구는 공격적이었다. 경기 내내 높은 스트라이크 비율(71.1%)을 꾸준하게 유지, 두산 타선을 압박했을 정도다.
일등공신은 단연 새롭게 장착한 변화구다. 경기 뒤 그는 “네일의 스위퍼를 참고했는데, 슬라이더로 생각하고 던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구(37구)와 슬라이더(24구), 포크볼(17구), 커브(12구)를 던졌다.

무엇보다 과감하게 주무기 커터를 배제한 게 돋보였다. “최근 커터가 안 좋아지면서 아예 안 던졌다”면서 “대신 슬라이더와 커브를 섞어 던졌는데, 오늘 처음 던진 슬라이더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제 우연히 네일의 스위퍼 그립을 보고 ‘한 번 던져볼까’ 했다. 그게 (마운드 위에서) 실제로도 잘 됐다”고 환하게 웃었다.
영웅군단 12년 차 원클럽맨이다. 길고 긴 담금질 속 지난해 선발 투수로 안착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 바 있다. 2024년 150⅓이닝을 소화, 생애 첫 규정이닝(144)을 채웠다. 또한 9승8패 평균자책점 4.37(73자책)도 기록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올 시즌 들어 초반 부침이 있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복 있는 투구를 반복했고, 커터 제구마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무너질 때마다 자신을 다듬었고, 그 끝에서 슬라이더라는 실마리를 찾아냈다. 흔들리던 시계추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팀의 토종 에이스다. 하영민은 현시점 외국인 왼손 에이스 케니 로젠버그에 이어 2선발 역할을 수행 중이다. 선발진이 유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윤하는 5경기 0승 4패 평균자책점 7.33(23⅓이닝 19자책)에 그치는 등 부진하다. 1군에 재차 합류한 윤현도 3경기 0승1패 평균자책점 5.91(10.2이닝 7자책)을 기록, 상황은 매한가지다. 여기에 큰 기대를 모았던 신인 정현우는 어깨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하영민의 어깨가 무겁다. 그 역시 연쇄부진에 휘말리면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두산전 호투를 통해 나아가고자 한다.
고민과 함께 풀어내야 할 숙제도 있다. 슬라이더와 커터를 완벽히 구분해서 던지는 데 성공한다면 투구 패턴은 훨씬 더 다채로워진다. 그는 “커터가 괜찮아지면 다시 던질 예정이다. 지금은 각이 큰 새 슬라이더를 얻게 돼 스스로도 기대가 크다. 계속해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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