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에 빠진 듯, 빠져나가려 할수록 더 깊이 끌려간다. 넷플릭스 범죄 스릴러 시리즈 ‘악연’ 한줄평을 남긴다면 그렇다.
벗어나고 싶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나쁜 인연 속, 인물은 각자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간다. 이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혹은 이미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조금씩 선을 넘는다.
‘악연’은 단순히 자극적인 범죄극을 넘어선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여섯 인물 간의 연결고리는 퍼즐마냥 맞물리고, 예측 불가능한 반전은 시청자에게 ‘다음 화’를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캐릭터 각각이 주인공이자 사건의 중심이며, 이들이 쌓아 올린 선택의 나비효과는 점점 더 커다란 파국을 부른다. 마치 잘 짜인 연극 무대처럼, 인물 하나하나가 서사의 중심에 선다.
첫 화부터 시청자를 붙잡는 건 이희준이 맡은 사채남이다. 이름처럼 단순하고 뻔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절박함은 쉴드가 불가능하다. 사채로 무너진 삶,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욕망의 이면을 이희준은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그와 손을 잡는 김성균의 길룡 역시 만만치 않다. 고국의 아이 치료비를 마련해야하는 남자다. 악행도 서슴치 않는 밑바닥 심리를 김성균은 특유의 눈빛과 단단한 말투로 표현하며, 스릴러의 무게감을 더한다.
다음은 배우 박해수다. 그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목격남으로 분한다. 우연히 사건의 주변을 맴돌다가 결국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인물을 표현했다. 택시에 탄 채 주연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장면 하나로도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그 안에 숨은 악연을 상상케한다.
신민아는 의사 주연 역으로 분한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단단하지만, 내면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복수심이 얽혀 있다. 신민아는 특유의 담백한 얼굴로 이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왜’ 이 인물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납득하게 만드는 건 배우의 디테일한 감정선 덕분이다.
이광수와 공승연의 연기 변신은 작품의 쉼표 같다. 평소 유쾌하고 엉뚱한 캐릭터로 익숙한 이광수가 이번엔 안경남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한의사로 살아가던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진다. 실수를 감추기 위해 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결국 자멸로 나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몰입도를 높인다. 이광수는 기존 이미지를 지운 채, 완전히 다른 얼굴로 스크린을 채웠다. 그의 여자친구 유정을 연기한 공승연 역시 단순한 조력자 역할을 넘어, 동조자로서의 인간 심리를 설득력 있게 끌고 간다. 후반부 상스러움은 공승연에게서 발견한 새 얼굴이다.
‘악연’의 매력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시리즈는 사건의 결과보단 그 과정을 집요하게 좇는다. 여섯 인물 모두 선과 악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시청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겠습니까?”
잘 짜여진 서사 구조의 완성도로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작품이다. 김성균부터 박해수까지 연기 잘 한다는 배우들이 모두 모인 이유가 있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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