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장년 층의 음악’으로 치부되던 트로트가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재조명받기 시작한 시기는 2020년 즈음이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불러일으킨 신드롬에 코로나19 팬데믹도 큰 역할을 했다. 야외 행사는 줄었지만, TV로 즐길 수 있는 트로트는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팬덤 문화를 전파했다. 국민MC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한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트로트 붐이 불자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으로 시발점이 된 TV조선뿐 아니라 종편, 지상파를 막론하고 트로트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우승자를 가리는 경연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스핀오프격의 예능, 토크쇼 등 TV를 틀었다 하면 트로트가 흘러나왔다. 올해도 여전하다. 매년 같은 시기 방송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은 시즌을 거듭하고 있다. 아이돌 주류의 음악방송이 있다면 ‘더 트롯쇼’처럼 트로트 가수를 위한 음악방송도 생겨났다.
주 시청 세대는 중장년층이다. 이들이 역대 시청률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젊은 세대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빠져나가도 여전히 리모컨을 쥐고 있는 이는 중장년층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방송사에게 시청률은 곧 광고 수익과 직결된다. 시청률을 고려한다면 트로트보다 매력적인 소재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출연자 인기에 편승해 론칭한 파생 프로그램이 수두룩했다. 특히 TV조선에서 트로트 경연을 이끈 서혜진 국장이 MBN으로 이직해 만든 ‘불타는 트롯맨’, ‘현역가왕’ 등도 관련 방송 확장에 일조했다.

이 분야 최고 스타는 단연 임영웅이다. 2020년 미스터트롯 시즌1의 우승자로 긴 무명 세월을 지나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당시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결승전 시청률은 무려 35%로 종편 최고 시청률이던 JTBC ‘스카이캐슬’(24%)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0년 ‘1박 2일’이 기록한 역대 예능 1위 시청률(43%)에 뒤를 이어 국내 예능 사상 두 번째 시청률 기록을 새로 썼다. 대중문화계를 뒤흔든 흥행에 임영웅을 비롯해 이찬원, 영탁, 장민호, 정동원 등 시즌1로 탄생한 스타들은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신드롬엔 끝이 있기 마련이다. ‘포스트 임영웅’을 기다린 지도 수년째지만 형만 한 아우가 나오진 못했다. 관련 프로그램이 범람하며 시청률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결승을 앞둔 미스터트롯3는 최고 시청률 16.1%, 지난달 종영한 현역가왕2는 13.9%를 기록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청자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우승자가 배출되지만 새로운 스타 탄생으로 보긴 역부족이다. 우승자 타이틀을 달지만 임영웅급의 스타는 찾아보기 어렵다. 출연자 돌려막기도 이를 거든다. 한일 가왕전에 나갈 현역 가수를 뽑는 현역가왕은 그간 주목받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다. 트로트 인기에 편승해 장르를 바꿔 트로트에 도전하는 출연자들도 부지기수다. 경연이 종료되면 트로트가 아닌 타 장르를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양한 OTT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전통 미디어인 TV의 선호도는 낮아졌고, 시청률은 과거에 비해 턱없이 초라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시청률에 따른 광고 수익을 얻는 방송사 입장에선 어느 수준을 보장하는 고정 시청층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도 시청률 10%를 넘기기가 어려워진 방송가 환경을 감안하면 트로트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뻔한 포맷에도 고정적인 수요가 있다는 의미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중장년층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꾸준히 제공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전통가요로 경연에 참여하고, 그들이 존경하는 원곡 가수들을 언급해 재조명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한국대중음악학회가 발표한 ‘대중의 트로트 장르와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연구(2022)’에 따르면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은 여러 세대가 같이 시청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과가 나온 반면, 방송국의 과잉편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컸다. ‘우승해도 스타가 되기 어렵다’는 다수의 의견은 무분별한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으로 우승자에 대한 인식과 희소성 감소를 경고하는 결과다.
지난 5년간 트로트 프로그램이 방송계 주류로 안착하면서 이를 지켜본 시청자의 보는 눈도, 듣는 귀도 까다로워졌다. 새로운 시도 없이는 새로운 시청자 유입도 불가능하다. 시청률 하향 곡선 탈피를 위해서는 더욱 참신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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