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우는 그 자체로 빛나는 친구였어요.”
배우 최희진이 MBC 금토드라마 ‘모텔 캘리포니아’로 마음 따듯한 로맨스를 마무리했다.
15일 종영한 ‘모텔 캘리포니아’는 시골 모텔에서 태어나 모텔에서 자란 여자 주인공이 12년 전 도망친 고향에서 첫사랑과 재회하며 겪는 우여곡절 첫사랑 리모델링 로맨스. 심윤서 작가의 소설 ‘홈, 비터 홈’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배우 최희진은 동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수의사가 된 윤난우 역을 맡았다.
19일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사옥에서 만난 최희진은 “자극적이지 않고 말랑말랑한 드라마였다. 시청자분들의 그 마음을 잘 헤아려주신 것 같다”며 시청률에도 만족을 표했다.
‘힙하게’(2023), ‘힘쎈여자 강남순’, ‘로얄로더’(2024) 등에 출연하며 그간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지만 난우처럼 천진난만하고 맑은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최희진만의 윤난우를 그려달라’는 작가의 조언에 힘을 얻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지난달 말 촬영을 마쳤다. 사전제작이 주를 이루는 드라마계에서 보기 드문 ‘생방 촬영’이었다. 편성 전쟁이라 불리는 최근 드라마계의 상황을 견주어 볼 때 되레 감사한 현장이기도 했다. 최희진은 “촬영이 끝난지 얼마 안 돼서 아직은 난우를 보내주고 있다. 찍으면서 방송됐는데, 생방 느낌의 촬영은 처음이라 좋은 경험이 됐다”고 의미를 찾았다.
평소 철저히 준비해가는 최희진에게 새롭게 연기하는 방법을 알려준 현장이었다. 즉흥적인 상황들이 많았고, 말 못하는 동물들의 돌발 행동도 이유가 됐다. 실험용 동물들을 탈출 시키는 첫날, 첫 촬영부터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윤난우의 빈 공간을 채워가며 고민하고 또 했다. 배우 최희진에겐 배움이 많았다. 그는 “평생 연기하고 싶은 나에겐 더 특별한 작품이다. 그 어떤 작품보다 많이 소통했다”면서 “정말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다음 작품을 한다면 ‘모텔 캘리포니아’를 통해 배운 점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수의사라는 직업도 작품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엔 애완동물을 돌보는 수의사라고 생각했지만, 대동물을 다룬다는 걸 알고 더 흥미를 느꼈다. 극 중 등장하는 당나귀와 친밀감을 쌓기 위해 더 일찍 현장에 나가 노력했다고. “나중엔 내 목소리에만 반응하더라”라고 뿌듯하게 웃어 보인 최희진은 “수술에 성공하고 수의사로 성장하는 모습도 있었다.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돌아봤다.

다만, 난우의 서사 중 편집된 장면들도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대학시절, 불법 동물 실험에 관한 교내 내부고발을 해 퇴학 처분에 이른다. 마침 연수의 동업제안이 있었고, 선을 보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벗어나기 위해 하나읍으로 향하는 서사다. 원작은 한우와의 러브라인이 있을 뿐, 연수와의 관계는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스스로 채워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작품 속 상황에 의문을 가지면서 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점을 느낀 작품이에요. 전작들은 인물의 서사가 깊이 박혀있었다면, ‘모텔 캘리포니아’는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았죠. 난우는 주관이 뚜렷한 친구라 감정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사랑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디렉션에 맞추고자 했죠.”
‘사랑스럽게’라는 설정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난우가 처한 상황과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시청자를 설득하며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지 공감하며 찾아가려 했다. 추가하고 싶은 대사가 있으면 직접 의견을 내기도 했다.
‘모텔 캘리포니아’를 시청하며 궁금했던 모든 것을 물었다. 먼저 천연수를 향한 윤난우의 감정이었다. 호감과 사랑 중 어느쪽이었을까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나도 궁금했다”고 답했다. 연수와 공감대를 쌓기 시작한 건 동물에 대한 가치관의 일치 때문이었다. 호감이 생겨 반했지만, 사랑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는 해석이었다. “여전히 물음표”라고 답하면서도 “연수가 꽃다발을 보내는 등 착각할 만한 상황이 있어 헷갈리긴 했지만, 선배로서의 호감 정도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반적인 로맨스 드라마가 그렇듯, 자칫 비호감을 살 수 있는 캐릭터였지만 윤난우는 달랐다. 연수와 계약연애를 하는 것도 강희가 하나읍에 나타나기 전에 벌어진 일. “난우 입장에선 강희가 없었고, 강희를 보자마자 연수가 좋아하는 상대라는 걸 깨닫는다. 꼬이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난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설정했다”면서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을 먼저 생각해준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난우의 설정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돌아봤다.

한우(정용주)와의 러브라인은 원작에서도 다뤄진 부분이다. 인물 소개에는 동물을 향한 난우의 진심과 연수와 동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언급되어 있다. 다만 난우의 가족 관계, 학창 시절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한우를 ‘선배’로 지칭한 난우는 작품의 배경이 된 하나읍에서 자라난 걸까. 최희진은 “처음부터 하나읍 사람이진 않았던 것 같다. ‘오빠’라고 하지 보단 드라마의 결에 맞춰 ‘선배’라고 부른 게 아닐까. 왜 선배라고 하는지 사실 계속 고민했고, 어려웠다”고 했다.
극 중 강희(이세영)이 말한 것처럼 윤난우는 “꼬인 데 없고 뒤끝도 없는” 인물이었다. 사랑 받고 자란 티가 여기저기서 피어났다. 각 인물을 대할 때마다 난우의 캐릭터성을 잃지 않기 위해 줄다리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난우를 “그 자체로 빛나는 친구”라고 해석한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입체적이지 못했다.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라 오히려 어려웠다”고 했다. 주변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성향의 인물이었다. 난우의 서사를 가져가며 사랑스러움도 표현해야 하는데, 이 모든 걸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어렵게 다가왔다.
난우는 수의법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하나읍을 떠난다. 병원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것에 그치기 보다 치료 상황에서 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말을 두고 최희진은 “난우다운 결정이라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이세영, 나인우 등 또래 배우들과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대선배’ 이세영과의 만남에 긴장도 했지만, 스스럼 없이 다가와 준 이세영 덕에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히 이세영에 관해서는 “첫화부터 최종화까지 강희의 감정선이 짙게 들어간다. 매 장면 선배님의 눈빛이 너무 좋았다.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만일 나도 깊은 호흡을 가져가야 하는 인물을 만난다면 선배님이 생각날 것 같다”고 답했다. 나인우 역시 힘을 불어넣어 줬다. 어렵게 느껴진 순간들마다 도움을 주고 자신감을 채워줬다.

황금 시간대라 불리는 MBC 금토 라인에 편성돼 시청자를 만났다. 작품을 향한 관심, 캐릭터의 비중도 높아졌고 무엇보다 지상파 첫 미니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주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OTT는 찾아서 보는 분들만 볼 수 있어 젊은 층이 알아봐 주셨다면, 이번엔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신다”고 웃어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 ‘맥베스’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다. 당시 주연배우진의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예종에 진학해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내면을 채우고 성장하는 걸 좋아해요. 단계를 밟아가면서 조금씩 채워가고 싶다는 바람이죠. 연기하면 항상 깨닫는 게 있어요. 캐릭터에 몰입할 때 만큼은 그 인물로 살아가다 보니 더 새로운 것들을 보고 하게 되죠. 시청자의 공감에 뿌듯함도 느껴요. 그럴 때마다 나와 잘 맞는 직업이라는 걸 깨닫죠.”
‘모텔 캘리포니아’를 마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내가 연기를 왜 하고 싶었는지 되돌아보고, 한 번 더 동기부여를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답했다. 서사가 더 깊은 인물을 만나 조금 더 진지하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모텔 캘리포니아’의 윤난우가 ‘힘쎈여자 강남순’의 리화자, ‘로얄로더’의 강희주라는 걸 알아챈 시청자의 반응에 유독 기분이 좋았다는 최희진. 그는 “맡은 캐릭터마다 다른 얼굴을 소화하는 배우라는 걸 알아봐 준다면 그보다 좋은 칭찬은 없을 것 같다. 더 다양하게 변화하고 싶다”고 바랐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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