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외인 선수가 등장했다.
프로야구 LG는 지난 7월, 구단 역사에 남을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와 작별했다. 에이스로 버텨오던 켈리가 에이징 커브와 함께 과거와 같은 보습을 보이지 못하자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5년간 이어진 동행을 끝내고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라는 우완 투수를 품었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꿈꾼 LG는 그가 가진 99경기(49선발)에 달하는 빅리그 경험에 베팅을 걸었다.
정규시즌 성적표는 11경기 3승 2패 1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4.02(47이닝 21자책점)로 명성과 기대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LG가 띄운 승부수의 이유가 가을잔치에서 빛을 발한다. 헐거운 불펜을 보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염경엽 LG 감독이 에르난데스의 보직 변화를 감행했는데 그게 귀신 같이 맞아떨어졌다.
KT와의 지난 준플레이오프(준PO·5전3선승제)에서 날아다녔다. 5경기 모두 등판해 7⅓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1홀드 2세이브를 챙겼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는 동료 임찬규가 가져갔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맹활약이었다. 역대 단일 준PO 5경기에 모두 나선 최초의 외인 투수였다. 국내 선수도 사상 5명밖에 세우지 못한 기록이었다. 그의 헌신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끝이 아니었다. 지난 17일 열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3차전에서도 임찬규의 뒤를 이어 3⅔이닝 2피안타 5탈삼진 1볼넷 무실점 피칭을 수놓아 1-0 승리를 지키는 천금 같은 세이브를 올렸다. 2연패로 벼랑에 몰려있던 팀을 구하는 쾌투였다.
아직 그 벼랑 끝에서 올라서진 못했다. 남은 경기 모두 ‘필승’의 의지로 임해야 한다. 자연스레 믿고 맡길 불펜 에르난데스의 등판 여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감동적인 헌신과 별개로 몸이 따라주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4차전을 앞두고 만난 에르난데스는 “조금 피로가 느껴지긴 한다. 지친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정신적으로 모든 게 다 준비돼있다”는 듬직한 한마디를 팬들에게 전했다.
등판 여부는 미지수다. 염경엽 LG 감독은 “엘리는 오늘(19일)까지 쉬는 게 맞다. 5차전 가게 되면 좋은 카드로 쓸 수 있다. 휴식을 주는 게 맞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팔 뭉침 증상은 큰 건 아니다. 보통 투구를 마치고 나면 겪는 현상이다. 쉬게 해주려고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무조건 ‘NO’는 아니다. 이대로 시즌이 끝날 수도 있는 LG인 만큼, 경우에 따라 피치 못하게 에르난데스를 꺼낼 수도 있다. 선수 본인이 4차전 등판 여부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여지를 남긴 배경이기도 하다.
에르난데스는 “(우천 취소) 휴식일에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많은 도움을 받았고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잠실=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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