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하던 대로.’
프로야구 LG가 맞이한 2024년의 가을은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 최강자로서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상대를 기다렸던 여유는 없어졌다. 야심 차게 내걸었던 ’왕조 구축’이 무색하게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치면서, 준플레이오프(준PO·5전3선승제)부터 쉽지 않은 등반에 나서는 입장이다. 반가운 기억은 많지 않다. ‘V3’ 이전에 치른 4연속 포스트시즌(PS)에서 모두 중도 탈락을 맛봐 KS 무대조차 밟지 못했던 LG다.
올해는 다른 결말을 꿈꾸는 가운데, 첫 단추는 잘 채웠다. KT와의 5차전 혈투를 이겨내며 2019∼2021년에 겪은 준PO 3연속 탈락 고리를 끊었다. 삼성이 기다리는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에 도착해 KIA가 기다리는 KS행 티켓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지막 전장에 닿을 수만 있다면 잠시 빛이 바랬던 왕조를 향한 꿈도 다시 펼쳐볼 수 있는 LG다.
가을야구 등정에 한창인 염경엽 LG 감독은 들뜨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춘다. “PS라고 특별한 대비를 하거나 새로운 걸 할 생각은 없다. 하던 야구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LG가 걸어왔던 길, 난관을 뚫었던 익숙한 방식 그대로 헤쳐 나간다는 뜻이다.
실제로 준PO에서 염 감독은 소위 ‘경엽볼’로 불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활발한 작전 지시와 죽음을 불사하는 도루, 베이스러닝으로 KT를 무너뜨렸다. 단일 준PO 팀 최다 12도루로 신기록을 작성하며 스몰볼의 진수를 보여줬다. 종전 최다 기록 보유팀인 2011년 SK(현 SSG)의 6도루를 훌쩍 뛰어넘었다. 선봉장 신민재는 홀로 5도루를 올려 개인 준PO 최다 도루 신기록을 작성했을 정도.
LG가 통합우승을 차지했던 그 방식 그대로다. 2022시즌 7.6%에 불과했던 도루시도율은 염 감독이 LG에 부임한 지난해 13.3%(리그 1위)로 치솟았다. 도루성공률이 최하위 62.2%에 그치면서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기도 했지만, 염 감독은 뚝심을 잃지 않았다. 올해도 도루시도율 12.5%(1위), 성공률 68.4%(9위)로 컬러를 그대로 유지했다. 염 감독은 시즌 내내 “아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득점 확률을 올리는 데만 집중할 것”이라며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PO도 마찬가지다. 1차전에서 팀 홈런 1위(185개)에 빛나는 삼성의 빅볼에 대포 3방을 맞으며 호되게 당했지만, 흔들림은 없다. 염 감독은 “하던 대로 해야 한다. PS는 특히 그렇다. 상대 분석보다 우리가 해야할 걸 얼마나 잘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며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수인 삼성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PO를 앞두고 “LG의 작전 야구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고민했다”며 “상대가 시즌 내내 (스몰볼) 야구를 추구했다. 그래서 PO에서 포수 3인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라며 상대의 기동력 저지에 사활을 걸었다. 강민호-김민수-이병헌이 나란히 30인 엔트리에 이름을 실은 배경이다.
29년간 이어진 타는 갈증을 해소한 염경엽 감독의 뚝심이 또 한 번 LG의 기적을 빚어낼 수 있을까. 베이스에 설 LG 주자들의 발끝, 그곳에 LG의 미래가 걸렸다.
대구=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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