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대교체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두다. 여야를 막론하고 ‘물갈이’와 ‘혁신’을 필승 전략으로 내세우지만 구체적인 전술은 모호하다. 해법을 고민하고 있을 정치인들에게 걸그룹 사례를 참고하라 말해주고 싶다.
아이돌 그룹은 세대교체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례다. 특히 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에스파 등 이른바 ‘4세대 걸그룹’의 대약진이 두드러졌다. 4세대 걸그룹은 블랙핑크·트와이스 다음 세대, 2020년 전후로 데뷔한 팀을 구분해 부르는 용어다.
매출만 놓고 보면 이들은 아직 BTS, 세븐틴 등 전세대 남자 아이돌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지만 국내외 차트 성적, 유튜브 조회수 등 인지도와 화제성 측면에서는 동세대 남자 아이돌을 압도하며 K팝 주류 반열에 올라섰다.
이들은 어떻게 이전 세대와 경쟁해 살아남고 성공 했을까.
남자 아이돌은 팬덤 형성이 중요하다. 10대, 20대에 ‘입덕’한 팬이 멤버와 함께 나이를 먹으며 추억을 쌓는다. BTS는 ‘군백기’를 보내고 있지만 팬덤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다. 동방신기·GOD·빅뱅 같은 제법 오래된 팀들도 마찬가지다. 음원을 내거나 공연 소식이 들리면 콘크리트 팬덤이 결집해 화력 지원에 나선다.
반면 여자 아이돌은 팬덤 형성이 어렵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부동층 공략이 명운을 가른다. 단기전에 능해야 하며 경쟁도 더 치열하다. 시작부터 기세를 올리지 못하면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 뽑아주면 배우면서 열심히 하겠다는 멤버는 없다. 모든 것이 준비된 다음에야 출사표를 던질 자격이 주어진다.
대형 기획사에서는 최소 3∼4년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오디션을 통해 인재풀을 만들고 혹독한 트레이닝과 검증 과정을 거친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선행 투자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마다 깜짝 영입한 인재가 여러 이유로 후보 등록 전에 낙마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걸그룹 데뷔조 선발은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교한 컷오프 과정을 거친다. 공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정치권에서 참고할 부분이다.
4세대 걸그룹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서로 비방 하지 않는다. 같은 그룹 멤버 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절친·친자매 같은 화기애애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한 자녀, 1인 가족 세대를 공략하는 4세대 걸그룹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 중 하나다.
이들이 ‘OO챌린지’라는 제목을 달아 올린 영상을 보면 ‘상생’코드가 명확하다. 방송국 복도 같은 곳에서 만난 다른 회사 걸그룹 멤버의 안무를 따라 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영상이 수 없이 많다. 반면, 정치인 이름으로 ‘OO챌린지’를 검색해 나온 결과는 전혀 다르다. 비방과 편 가르기, 상대 진영 공격을 위한 ‘저주 릴레이’가 대부분이다.
주요 멤버가 쌓은 탄탄한 ‘서사’도 4세대 걸그룹의 특징이다. 조작 논란이 불거졌던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이 실력으로 살아남아 정상까지 올라오는 과정은 요즘 M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함’ 그 자체다.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총 동원해 소통하는 것도 4세대 걸그룹의 경쟁력이다. 공중파 예능, 유튜브, 틱톡 등 온갖 채널에서 팀이 아닌 개인의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호감도를 끌어 올린다.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명함을 돌리고 영혼 없는 단체 문자를 뿌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예비 후보들이 참고할 부분이다.
당 지도부가 부동층·수도권·MZ세대 공략을 원한다면 당장 유튜브 검색창에 ‘4세대 걸그룹’을 입력하시라. 전통시장에서 어묵 먹는 사진은 그만 찍으셔도 된다. 어린 친구들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고 배워야 살아남는다.
전경우 연예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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