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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談談한 만남] 허준호 “제2의 전성기? 죽었던 놈 살리신 것” 소회

입력 : 2024-01-22 14:28:27 수정 : 2024-01-23 15: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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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俳優)의 ‘광대 배’는 ‘사람 인(人)’ 변에 ‘아닐 비(非)’자가 합쳐진 글자다. 인간 아무개가 아니라 새로운 누군가의 삶을 그려내는 직업이다.

 

허준호는 그 역할을 어느 누구보다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사이코패스 살인자(‘이리와 안아줘’), 인간의 몸을 옮겨다니며 영력을 사냥하는 악귀(‘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영혼을 보는 남자(‘미씽2’), 북한 대사(‘모가디슈’), 폭력조직 수장(‘광장’) 등 캐릭터 변주가 대단하다. 인간부터 초자연적 존재에 이르기까지 허준호가 연기하면 다르다.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로 태어난다.

 

‘믿고 맡긴다’. 변화와 유행에 민감한 엔터 업계 특성상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허준호에게 맡겨진 이상 투자자·감독·작가·대중은 믿고 본다. 

 

최근에는 영화 ‘노량’(김한민)을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노량은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 허준호는 극 중 명군 수군의 부도독이자 이순신 장군의 듬직한 전우인 등자룡 역을 맡았다. 명치까지 오는 하얀 수염, 인자함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눈매가 인상적이다. 

 

베테랑 배우이지만 그는 김한민 감독의 출연 제의에 도망가고 싶은 부담감을 느꼈다는 의외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어렵다. 물론 ‘실미도’(2003) 같은 영화를 찍기는 했지만, 실화 바탕 영화는 늘 부담이 되더라. 표현 방법에 있어 실제 인물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아플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라면서 “저도 아버지가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허준호의 아버지는 원로 배우 허장강이다. 신성일·남궁원·최무룡과 19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975년 9월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270여편의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허준호는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렸을 땐 ‘허장강의 아들’이라는 시선이 그렇게 싫었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가장 큰 빽이더라”며 미소 짓는다.

 

이어 “지금 저에게서 아버지의 얼굴이 나온다는 말이 그렇게 좋더라. 지금도 연기 할 수 있는 나의 힘”이라며 “제가 작품 끝나면 멍청할 정도로 배역을 빨리 잊어버린다. 캐릭터에서 빨리 나오는 편이다. 이것 역시 아버지 옆에서 보고 배운 덕이다. 일은 일이고, 생활은 생활이고. 작품의 감정에 너무 빠져있으면 주변 사람들도, 내 일상도 힘들어진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59)임에도 연기 이야기에 소년처럼 눈을 반짝인다. 2007년 드라마 ‘로비스트’ 이후 약 9년여의 공백기를 가졌던 허준호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현장, 그를 찾아주는 감독들과 대중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단다.

 

대본의 쉼표 하나,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외우는 배우로 유명한 허준호.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그냥 집에 있으면 밥이나 축낸다. 기껏해야 공부한다고 영화 보고 앉아 있는 게 다 아니겠냐. 그런데 이렇게 불러줘서 행복하고 작업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면서 주먹을 꽉 쥔다. 

 

공백기의 시작인 2010년부터 기독교 신자가 돼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2016년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 그리고 영화 ‘불한당’으로 복귀한 이후 제2의 전성기라고 할 만큼 수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2018년에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 소식을 알렸다.

 

지금도 한국 촬영이 없을 때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집에서 아내와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그다. 복귀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허준호는 “(설)경구가 미국으로 찾아왔다. 어느날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경구가 (송)윤아와 아기 데리고 와 있더라. ‘어떻게 알고 왔냐’고 하니깐 ‘내가 너를 못 찾을까’라고 하더라.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불한당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고. 그 사이 들어온 연기 제안도 다 고사했다. 그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의사 역을 맡았다. 그 전에는 그런 역할을 제안받았던 적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움직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2의 전성기, 인생 2막이 아니라 죽었던 놈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것”이라며 “한 번의 공백기가 있어 지금의 삶이 좋다. 옛날 일은 거짓말처럼 다 잊어버렸다. 평온하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나이 들고 나서의 장점은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주도를 하기보다는 한 발 뒤로 물러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라고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포털사이트에 허준호를 검색하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2005년 뮤지컬 ‘갬블러’ 공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그. 당시 일본인 기자로부터 독도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기자에게 다가가 펜을 낚아채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다. 해당 질문을 한 일본인 기자는 “미안하다. 펜을 돌려달라”고 물러섰다. 

 

허준호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 취재진과 오직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약속을 깼다”면서 “아버지(허장강)가 의용군으로 전쟁을 치르다 허벅지에 총알 관통상을 입으셨다. 어린 마음에 ‘우리 아버지 끌고 가서 총알 맞게 한 나쁜 놈들’이란 마음이 있었는데, 약속을 안 지키니 화가 나기도 했다. 그 분 덕분에 모든 인터뷰가 취소돼 마음 편히 일본 관광을 했다”고 말해 현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3년 전에 제가 ‘꼰대’라는 걸 인정했어요. 작품을 보는 시선이나 행동이 옛날 사람이 다 됐더라고요. 그때부터 모든 걸 소속사에 맡기기로 했어요. 감각이 있는 젊은 사람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볼 땐 아니더라도 그 친구들이 괜찮다고 하면 출연하기도 합니다. 이젠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이거든요. 고집을 피우는 게 있다면 연기에 임하는 자세죠. 백도화지처럼 작품마다 맞춰서 연기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고집입니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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