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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K팝 가수들의 日 ‘홍백가합전’ 출연과 상징적 의미

입력 : 2023-11-27 09:00:00 수정 : 2023-11-27 07: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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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제74회 NHK 홍백가합전’ 출연자 명단을 발표했다. 많이들 알다시피 매년 12월31일 열리는 일본 최대 연말 음악방송이다. 일본선 ‘홍백가합전’에서 섭외 받고 출연하는 것이 곧 인기 아티스트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올해는 K팝계에서 역대 최다인 6팀 출연이 결정됐다. 보이그룹 세븐틴과 스트레이키즈, JO1, 그리고 걸그룹에선 르세라핌과 트와이스 유닛 미사모, 니쥬가 ‘홍백가합전’ 명단에 올랐다.

 

그런데 올해 ‘홍백가합전’ 관련으론 더 생각해볼 부분이 생긴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다. 먼저, 위 ‘홍백가합전’ 출연 K팝 팀들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건 세븐틴과 스트레이키즈다. 둘 다 이번이 첫 출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좀 기묘한 일이기도 하다. 세븐틴이 일본시장 데뷔를 치른 건 5년 전인 2018년. 그 5년 동안 일본 오리콘 위클리 앨범차트에서 통산 11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해외 아티스트로선 해당차트 최다 1위 기록이다. 스트레이키즈도 2020년 첫 일본 싱글 ‘TOP’이 오리콘 위클리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한 이래 일본서 승승장구해왔고, 그 흐름이 올해 일본 4대 돔 투어 전석매진까지 갔다.

 

그러나 이처럼 수년간 대단한 성과를 내온 팀들치곤 ‘홍백가합전’ 선정에 다소 늦은 감이 있는 데다, 더 중요한 건, 그마저도 이른바 ‘쟈니스 사태’ 탓이었단 해석이 지배적이란 점이다. 일본 최대 남성아이돌 기획사 쟈니스를 설립한 쟈니 키타가와가 생전에 소속사 연습생들 대상으로 상습적 성(性) 착취를 자행했단 폭로 건 말이다. 그 탓에 각종 일본 미디어 및 광고업계에선 ‘쟈니스 보이콧’이 속속 일어났고, 올해 ‘홍백가합전’에서도 무려 44년 만에 처음 쟈니스 소속 아티스트를 단 한 팀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세븐틴과 스트레이키즈는 이 같은 ‘쟈니스 로스(loss)’ 탓에 일종의 ‘대타’ 격으로 명단에 들어가게 됐단 해석.

 

더 넓게 보면 상황은 더욱 기묘하다. K팝이 일본 대중음악시장서 일정수준 이상 파이를 차지한 지 15년도 넘은 시점이지만, 그 15년 동안 K팝 보이그룹 중 소위 ‘일본시장용’이 아닌 팀으로서 ‘홍백가합전’ 출연은 올해 직전까지만 해도 동방신기 단 한 팀뿐이었다. 일본서 현상적 인기를 얻은 방탄소년단도 샤이니도 빅뱅도 유독 ‘홍백가합전’ 출연만큼은 없었다. 그동안 걸그룹은 소녀시대, 카라 등까지 6팀이나 출연했지만 말이다.

 

이런 게 해외문화 수용에 있어 자주 언급되진 않는 특이한 속성 부분이다. 해외문화가 ‘사람’의 형태로 밀려들어올 때, 보수적 미디어일수록 해외 ‘여성’에 비해 ‘남성’ 쪽은 적극 반영을 꺼린단 속성 말이다. ‘한국을 소비하는 일본-한류 여성, 드라마’ 저자 히라타 유키에는 ‘젠더의 상징성’ 차원에서 이 같은 속성을 해석하며, 예시로 일본가수 초난강(쿠사나기 츠요시)의 한국진출 상황을 들고 있다. 당시 초난강은 일본 활동 시의 부드럽고 편안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우스꽝스런 메이크업의 광대 모습으로 한국시장에 데뷔했었다.

 

히라타는 이에 대해 “초난강의 한국 진출 방식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역학과 민족 감정을 고려한 선에서 기획된 것”이라며, ‘남성’이란 젠더가 지닌 ‘강함’ ‘위협감’ 등 이미지가 해외 진출 시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대로 여성은 특유의 부드럽고 공존지향적인 이미지 탓에 문화 및 민족지배적 위협감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려 보수적 미디어에서조차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단 것. 일본서, 적어도 사회문화적 차원에선 가장 보수적인 미디어라 볼 수 있는 공영방송 NHK가 왜 K팝 여성 아티스트 출연엔 그토록 적극적이면서도 남성 아티스트들에만큼은 박한 자세를 취해왔는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또 다른 주목지점은 바로 쟈니스 문제다. 언급했듯 쟈니스는 일본서 명실상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대 연예기획사다. 업력도 반세기 가깝다. 그렇게 탄탄한 입지임에도 이번 ‘홍백가합전’ 제외 정도 소식에 일본 언론미디어들이 호들갑 떨며 기사를 퍼부어댄 이유가 있다. 쟈니스는 완벽하게 레거시미디어, 그중에서도 지상파방송과 사실상 한 몸이다시피 공생 체제를 이루며 성장해온 회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예능, 교양 등 가리지 않고 수많은 지상파방송 프로그램들에 고정 출연하며 대중성과 팬덤을 함께 키워왔다. 그런 회사에서, 어찌됐건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방송프로그램 출연을 보이콧 당했으니 이는 곧 회사 근간을 흔드는 일대위기가 닥친 셈이란 것.

 

여기서 반대로 말하면, 쟈니스는 믿기 힘들 정도로 온라인 기반 뉴미디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회사란 뜻도 된다. 실제로도 그렇다. 쟈니스 공식 유튜브 채널부터가 ‘무려’ 2019년에야 처음 생겼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일본 언론미디어에선 쟈니스 쇠락과 K팝 아이돌 득세 흐름을 뉴미디어에의 적응과 활용도 차원에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마케팅 기반을 온통 올드미디어-레거시미디어에만 의존하다보니 신세대 소비층 유입이 이뤄지지 않아 자국 아이돌이란 프리미엄에도 파이를 상당부분 K팝에 빼앗겨버렸단 얘기다.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매년 이맘때쯤 예외 없이 국내 언론미디어를 달구곤 하는 K팝계 ‘홍백가합전’ 출연 여부도 그저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일본 내 실질적 K팝 시장 확대와는 별 관련 없는 사안일 수 있겠다. 특히 보이그룹들에 있어선 그렇다. 레거시미디어에 ‘올인’해온 쟈니스가 ‘쟈니스 사태’를 맞기 전부터도 이미 위기에 봉착해있던 상황, 그리고 ‘홍백가합전’ 출연 팀조차 딱히 없이 뉴미디어에 ‘올인’해온 K팝 보이그룹들이 실제 일본시장선 지난 수 년 간 급격히 파이를 키워온 상황만으로도 현실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그럼에도 ‘홍백가합전’이 여전히 일본은 물론 국내서도 꾸준히 화제가 되는 건, 아무래도 문화시장에 있어 ‘대중성’ 개념에 대한 집착이 한일 양국에 그대로 남아있는 탓일 듯도 싶다. 또 ‘모두가 보는 방송에 나와 모두가 아는 아티스트’가 되는 쪽이 실제 K팝 업계와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한국대중 입장에선 자긍심 차원으로 더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기에 언론미디어에서도 그를 꾸준히 반영코자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실제 대중음악시장은 그와는 다르게 가고 있다. 대중성의 가치는 점차 휘발되고 이제 ‘단독성들의 사회’로 접어들어 각자 고도화된 형태의 팬덤화를 향해 나아가는 와중이다. 언론미디어의 보도가치와 실제 시장서 중히 여기는 가치는 그렇게 또 한 번 갈라진다. 흥미로운 광경이다.

 

/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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