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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운의 굿럭항저우] 中기자가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안 자고 일하나요?”

입력 : 2023-09-28 07:00:00 수정 : 2023-09-28 03: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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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미디어빌리지의 모습. 아직 불이 켜진 방들이 많이 보인다. 사진=허행운 기자

 

“중국인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지난 25일이었다. 메인미디어센터(MMC)로부터 약 45분 떨어진 항저우 전자대학 체육관에서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 구본길과 오상욱의 진한 브로맨스를 감상했다. 금·은메달을 건 집안싸움에 믹스트존 인터뷰, 시상식 후 진행된 미디어 공식 기자회견까지 마치고 MMC로 돌아오자 시간은 꽤 늦은 밤을 가리켰다.

 

지친 몸을 이끌고 미디어빌리지행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를 내리는데, 뒤에 있던 해외 기자가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일본 분이세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조금 구사할 수 있는 일본어를 못 알아들은 척 하기엔, 얼굴에 이미 이해했다는 표정이 번져버렸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일본 사람 같이 생겼다”는 답변이 날아왔다. 

 

미소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지만, 꾸준히 말을 걸어오는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말을 알아듣는 데서 오는 반가움이 있었으리라. 그때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려는 자원봉사자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대답하는 그를 봤다. 완벽한 현지인임을 직감했다. 알고 보니 일본어를 아주 잘하는 중국 기자였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꽤 길게 했다고 한다.

 

중국 항저우 메인미디어센터 내 메인프레스센터 간판의 모습. 사진=뉴시스

 

마침 빌리지에 묵는 그와 버스를 탔다. 20여 분간 일어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이야기를 칼럼에 적어도 되겠냐 묻자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 했다. 이유를 물었다. “펜싱장에 간 게 사실 회사에 보고를 안 하고 몰래 간 거다. 팬심 때문에”라는 소박한 답변이 왔다. 수려한 외모의 모 선수를 눈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잠시 한중관계라는 무거운 이유까지 생각했던 기자의 망상이 웃음으로 변했다.

 

이내 그는 “몇 시에 자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오전 2~3시쯤 자고 이른 경기를 챙기려 7시경 일어난다고 했다. “오~”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중국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잠도 안 자고 일하는 걸로 안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자의 케이스를 성급하게 일반화 시킬까 우려됐다. 그래서 큰 국제대회라 특별히 그렇다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회사 몰래 ‘덕질’을 하고 왔다는 그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삼켰다. 이내 씁쓸함과 뿌듯함이 교차했다. 한국인의 성실함에 대한 칭찬인 걸까, 너희는 왜 이렇게 일만 하냐는 동정인 걸까.

 

메인미디어센터 내 메인프레스센터가 취재진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많은 취재진이 타지에서 고생을 거듭한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걱정보다 몸은 더 고되고 피곤함이 진하게 몰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숙소를 나갈 동력은 신기하게 생긴다. 모두 선수들 덕이다. 경기를 마친 직후에만 느낄 수 있는 환희 혹은 아쉬움, 그 표정을 보다 보면 느끼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선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명감과 함께 애국심도 솟아나는 기분이다.

 

그들의 진심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온전히 전할 수만 있다면, 이번 대회만큼은 앞선 질문의 저의가 동정이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은 좀 더 안 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항저우의 밤이다.

 

항저우=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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