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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독창적인 K-좀비물

입력 : 2023-09-27 15:15:00 수정 : 2023-09-27 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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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위 아 더 좀비’가 25일 7~9권까지 단행본 출간되며 단행본으로도 완간을 맞았다. 웹툰 연재는 지난달 21일 123화로 마무리된 바 있다. 이명재 작가의 ‘위 아 더 좀비’는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좀비 서브장르다. 그리고 연재 내내 네이버 웹툰에서 중상위권 정도 인기를 얻었다. 성공작이긴 하지만 대단한 히트작은 또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위 아 더 좀비’에 많은 이들이 주목해온 이유가 있다. 그 설정 자체만으로 ‘이제 좀비 콘텐츠는 이것으로 나올 만큼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기존 좀비 서브장르 불문율을 깨는 전제, 즉 좀비들이 우글대는 환경에서 탈출코자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좀비 세상이 더 살기 편해 기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데도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층 쇼핑몰 서울타워에서 좀비 사태가 발생하고 정부에선 타워 전체를 봉쇄해 팬데믹을 막아내지만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상처 입고 삶의 방향을 잃은 일부가 봉쇄된 타워에 남아 비축된 식량을 소진해가며 좀비들을 피해 그대로 살아간단 설정. 확실히 ‘더 이상은 나올 게 없는’ 정도가 맞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더 이상은 나올 게 없는’ 정도 독특한 설정의 좀비 웹툰은 그간 생각보다 많았다. 예컨대 모래인간 작가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있다. 팬데믹 이후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돼 좀비들 모두 인간으로 돌아온 세계가 배경이다. 그러면서 좀비로 살아갈 당시 스스로의 행각들 기억 탓에 죄의식에 시달리는 이들을 그렸다. 이윤창 작가의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도 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시골로 데려간 아버지와 그 주변인들이 펼치는 따뜻한 시골 일상 개그물이다. 모두 서브장르 관습을 깨는 설정과 전개들이다. 특히 웹툰 중에서 이처럼 독창적 좀비 콘텐츠가 적지 않다.

 

단적으로, 지금 한국 대중문화시장은 ‘좀비 전성시대’이기 때문이다. 일단 콘텐츠 자체가 웹툰 중심으로 영화, TV드라마 등까지 쏟아져 수적으로 엄청나게 많고, 저 ‘전성시대’부터가 상당히 길다. 보통 2009년 연재 시작한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 히트를 시작으로 보니 벌써 15년째. 그러다보니 저 별만큼 많은 좀비 콘텐츠 사이에서 구분되는 차별성을 얻으려 ‘옆으로 비껴나간’ 독특한 설정들도 한껏 늘어나게 된 셈이다.

 

지난 15년간 흐름은 대략 이렇다. 먼저 ‘지금 우리 학교는’이 시작된 다음해 2010년 독립영화로 ‘이웃집 좀비’가 등장해 관심을 모았고, 웹툰계에선 2010년대 내내 ‘1호선’ ‘데드데이즈’ 등 수작들이 연이어 히트했다. 그런 관심 기반으로 2016년 영화 ‘부산행’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성립돼 ‘1000만 영화’ 자리에 오르면서 전 방위적 붐이 시작됐다. 이어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까지 크게 주목받자 비로소 ‘K-좀비’란 표현도 등장하게 된 순서.

 

그럼 애초 국내 ‘K-좀비’ 붐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거창한 정치사회적 원인들을 꼽아보려던 이들에겐 허탈할 수 있겠지만, 매우 단순하게도, 그저 2000년대 들어 할리우드서 일기 시작한 ‘좀비 트렌드’를 이어받은 흐름이다. 이처럼 특정 트렌드가 할리우드발(發)로 번져나가는 경우는 본래 적지 않다. 2002년 별 기대 없이 시장에 내놓은 ‘레지던트 이블’과 ‘28일 후’가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거두면서 트렌드가 시작됐다. 직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좀비 서브장르는 이미 B급 시장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였지만 불현듯 유행이 돌아온 셈이다. 이어 2004년 ‘새벽의 저주’도 흥행에 성공하고, 출판계에선 맥스 브룩스의 좀비 소재 서적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월드 워 Z’가 각각 밀리언셀러로 거듭나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좀비랜드’ 등 다른 A급 프로덕션 성공들로 이어졌고, 이에 미국방송사 AMC에서 2010년 TV드라마 ‘워킹 데드’를 내놓아 문화현상을 일으키면서 그 영향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은 물론 옆 나라 일본서도 2017년 불과 300만 엔 예산으로 만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31억2000만 엔을 벌어들이는 이변을 낳고, 만화계에서도 ‘아이 앰 어 히어로’ ‘좀100~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 등 히트작들이 이어졌다.

 

그럼 애초 미국선 왜 2000년대 들어 불현듯 좀비 트렌드가 되돌아온 걸까. 이에 대해선 트렌드 초기부터도 꾸준히 언급돼온 원인점이 있다. 2001년 ‘9.11 테러’ 영향이란 것이다.

 

‘9.11 테러’는 여러모로 미국은 물론 세계 질서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리고 당사자 미국인들에게 그 심리적 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건 이후로도 탄저균 테러, 애국자법 발동 및 각종 보안정책 강화 등이 계속돼 일상 불안감이 극도로 치솟았고 늘 알 수 없는 무리들에 공격받을 수 있단 공포가 생겨났다. 그러자 정확히 그 위협감을 장르적으로 풀어내는 좀비 서브장르에 반응하기 시작했단 것. 같은 맥락에서 2002년 ‘패닉 룸’부터 ‘노크: 낯선 자들의 방문’ ‘더 퍼지’ 등으로 이어진 ‘홈 인베이전’ 서브장르, 즉 안전한 듯 여겨졌던 자택으로 외부인들이 침입하는 공포를 다룬 서브장르 유행도 함께 일었다.

 

그렇게 시작된 좀비 서브장르 유행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미국선 2010년대 ‘월드 워 Z’ 영화판과 ‘웜 바디스’ 등에 이어 예술영화감독 짐 자무쉬까지도 ‘데드 돈 다이’를 만드는 등 흐름을 잇다가 올해 초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대박까지 이어졌다. 한국서도 무려 지상파 공영방송까지 드라마 ‘좀비탐정’을 내놓는 등 흐름이 꾸준히 이어져왔고, 이제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2가 대기 중이다. 트렌드가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봐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할리우드에 편승해 자국 좀비 콘텐츠가 한두 편 성공한 정도에 그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선 그 유행이 미국만큼이나 오래 지속되고 있단 점 말이다. 시작은 분명 할리우드 파동이었지만 지금의 트렌드 지속력은 실질적으로 한국사회 현실, 즉 일상 불안도가 점차 치솟고 주변이 온통 적으로 둘러싸인 듯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회현실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벌어진다고 보는 게 설득력 있다.

 

그런 점에서 ‘K-좀비’는 좀 더 깊이 연구돼야 할 필요가 있다. 서브장르 관습 내에서 또 다른 한국사회 현실들을 조명하고 있는 ‘위 아 더 좀비’ 등 ‘옆으로 비껴나간’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그간 지극히 한국적이라 여겨지던 사회적 고민들 역시 한국 울타리 안에서만 공감 받는 게 아니란 걸 갖가지 문화 콘텐츠를 통해 확인해본 현 시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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