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발표된 미국 빌보드 3월4일자 싱글차트 핫100에서 걸그룹 뉴진스 싱글1집 타이틀곡 ‘OMG’이 89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OMG’은 6주 연속 핫100 차트인에 성공했고, 프리싱글 ‘Ditto’의 5주 연속 차트인 자체기록을 경신하고 최고 순위도 74위로 ‘Ditto’ 82위를 능가했다. 이 같은 롱런은 뉴진스의 미국 인기가 기존 K팝 팬층의 ‘반짝’ 몰아주기에 기대고 있지 않단 점을 방증한다. 실제로 저변을 확대해가고 있단 것이다.
한편, 지난 2일엔 걸그룹 트와이스가 미국 ‘빌보드 위민 인 뮤직’ 어워즈에서 ‘브레이크스루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새롭게 발견되고 주목받은 아티스트에 주어지는 상이다. 이 같은 수상도 기본적으론 빌보드 차트 성적이 크게 좌우했다고 봐야한다. 트와이스는 2021년 ‘The Feels’가 핫100 차트 83위로 차트인한 데 이어 지난 1월 두 번째 영어싱글 ‘Moonlight Sunrise’도 84위로 차트인에 성공했다.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선 벌써 5번째 차트인이 이뤄졌다. 2021년 정규3집 ‘Formula of Love: O+T=<3’과 2022년 미니11집 ‘Between 1&2’는 모두 최고 순위 3위까지 오르고 8주 동안 차트인에 성공했다.

그중 실질적 유행지표로서 각광받는 핫100 차트 성과를 돌아보면, 역시 글로벌 점유율 35%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음원스트리밍 서비스이자 미국서도 압도적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스포티파이 성적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핫100 성적을 ‘만들어내는’ 중심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뭇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상대로 K팝 아티스트의 스포티파이 성적 지분은 그야말로 ‘방탄 천하’다. 미국 스포티파이에서 일간 피크 청취자수 50만 이상인 K팝 곡은 지난 2월까지 총 53곡이고, 그중 33곡이 방탄소년단과 그 멤버 또는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곡이다. 그런데 나머지 20곡 중 19곡이 걸그룹에서 나오고 있다. 블랙핑크, 뉴진스, 트와이스 및 블랙핑크 멤버 리사 곡으로 채워지고, 방탄소년단 외 남성아티스트 곡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Sugar Rush Ride’뿐이다. 특히 미국 스포티파이 일간 차트인 기준 누적 스트리밍으로도 K팝 10위권은 방탄소년단과 그 관련 곡이 5곡, 나머진 블랙핑크, 뉴진스, 리사 등의 곡으로 채워진다.
미국을 넘어 글로벌 스포티파이로 영역을 확장시켜 봐도 마찬가지다. 2월까지 글로벌 누적 스트리밍 수치로 K팝 최상위 성적 30곡 중 16곡이 방탄소년단과 그 관련 곡들로 채워졌지만, 나머지는 11년 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제외하면 블랙핑크, 트와이스, 레드벨벳 등 걸그룹 곡들과 블랙핑크 멤버 리사와 제니 곡이 더 들어간다. 누적이 쌓여감에 따라 여기에 뉴진스 곡들도 입성할 태세다.
이런 게 바로 방탄소년단의 엄청난 성과 탓에 종종 간과되곤 하는 ‘대원칙’ 부분이다. 본래 ‘사람’을 기반으로 삼는 낯선 해외 문화상품은 남성보다 여성아티스트 쪽이 대중적 어프로치 면에서 유리하단 대원칙 말이다. 이에 대한 연구도 많다. ‘한류를 소비하는 일본: 한류, 여성, 드라마’ 저자 히라타 유키에 역시 저서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역학”을 통한 “젠더의 상징성 문제”를 거론하며, 기본적으로 여성이란 젠더가 지닌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공존지향적인 이미지가 문화상품의 해외 진출 시 문화․민족적 침략(비틀즈의 ‘브리티쉬 인베이전’처럼) 색채를 지워줘 대중적 어필이 수월토록 이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크게 보면 광고 마케팅계의 3B(Beauty, Baby, Beast) 원칙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낯선 상품을 소개하는 덴 여성과 아기, 반려동물 등이 지닌 부드럽고 따스한 이미지가 거부감 없이 스며든단 개념이다. 그러고 보면 K팝 씬의 대표적 통설 중 하나인 “팬덤의 보이그룹, 대중성의 걸그룹”이란 개념 역시 이 같은 측면에 대한 고찰이라 볼 수도 있다.
방탄소년단 신화는 근본적으로 ‘팬덤 신화’다. 특별한 매력을 통해 팬덤을 키워나가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건 곧 대중성과도 유사하게 진행된단 점을 알려준 에피소드다. 이른바 ‘팬덤이 곧 대중성’이 되는 현장이었단 얘기다. 그런데 지금 빌보드 핫100 등 해외 유수의 단일 곡 인기집계 지표들은 이 ‘팬덤 현상’을 굳이 막아보려 온갖 장치들을 동원하는 중이다. 최소 빌보드 기준으로 ‘팬덤 신화’에 근거한 K팝은 향후 빌보드200 차트에선 수없이 볼 수 있어도 핫100 최상위권에선 보기 힘들어지리란 예상이 그래서 나온다.
바로 이 같은 시점, 그리고 멤버들 군 입대를 통해 ‘방탄 로스(loss)’가 당분간 펼쳐질 시점이기에, 적어도 각종 해외차트 지표상으로 방탄소년단 성과의 ‘후계자’는 걸그룹에서 나오리란 예상이 진작부터 나오던 차다.
돌아보면 한국서 처음 빌보드 핫100 차트에 입성한 팀도 걸그룹 원더걸스였고, 2004년 중국 아티스트 중 처음 빌보드 차트에 입성해 화제를 모았던 팀 역시 크로스오버 여성밴드 여자12악방이었다. 1960년대 서구사회 오리엔털리즘 붐과 1964년 도쿄올림픽 이슈 등에 힘입어 1963년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던, 소위 ‘운 때가 좋았던’ 사카모토 큐 이후 무려 16년 만에 다시 핫100에 입성했던 일본 아티스트도 2인조 걸그룹 핑크레이디다. ‘대중성의 걸그룹’은 동아시아 아티스트들의 전반적 서구진출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돼왔단 셈이다.
물론 방탄소년단이 극대치로 보여준 ‘글로벌 팬덤’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막강한 팬덤을 성립시킨 후 ‘팬덤이 곧 대중성’을 이끄는 전략. 그러나 위 언급한 문화상품의 해외진출 대원칙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도 있다. 방탄소년단이 워낙 놀랍고 신기한 케이스였을 뿐, 기본적 해외전략은 여성아티스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가장 수월한 길이란 점 말이다.
그런 점에서 K팝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춘 지금이라면 한국서와 같은 투트랙 전략도 충분히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팬덤이 곧 대중성’을 이끄는 한 트랙과 대중적 어프로치가 쉬운 상품으로 접근해 각종 차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점진적 팬덤화를 이끄는 또 다른 트랙의 공존. 어찌됐건 이미 현상은 벌어지고 있고, 향후 핫100 차트 공략은 4세대 걸그룹들 중심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거론돼온 국내 ‘걸그룹 전성시대’는 해외시장 차원에서도 한동안 유사한 맥락으로 흘러가리란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