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황제’ 펠레(82·본명 이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라)가 하늘의 별이 됐다.
펠레가 세상을 떠났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30일(이하 한국시간)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펠레는 한 명의 축구 선수, 그 이상이었다. 브라질의 희망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펠레의 등장으로 ‘축구는 브라질’이라는 공식이 탄생했다. 국제무대로 나서는 발판이 됐다. 가난과 군사독재로 신음하던 시절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도 했다.
불멸의 기록을 다수 남긴 것은 물론이다. 92년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세 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58년 스웨덴, 1962년 칠레, 1970년 멕시코월드컵서 정상에 올랐다. 펠레가 처음 출전한 스웨덴월드컵에서 작성한 최연소 기록은 64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펠레는 당시 월드컵 사상 최연소 득점(17세 239일), 최연소 해트트릭(17세 244일), 최연소 결승전 득점(17세 249일)을 작성했다. 월드컵 통산 12득점과 8도움 등 공격포인트 20개를 남겼다.
현역으로 뛰는 동안 1363경기에 출전해 1281골을 터트렸다. 1956년~1974년 브라질 산투스에서 뛰며 공식전 660경기에서 643골을 넣었다. 1975년에는 북미사커리그(NASL) 소속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해 세 시즌을 뛰었다. 브라질 축구 대표팀에서도 통산 A매치 92경기에서 77골을 넣었다. 다만, 공식 기록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펠레와 그의 소속팀이었던 산투스 등은 펠레의 통산 득점을 1283골이라고 주장한다. 친선경기, 투어 경기 득점 등이 다수 포함됐다.
한국과 오랜 인연을 자랑했다. 펠레는 1972년 산투스 소속으로 처음 한국(대표팀)을 찾아 친선경기를 치렀다. 1득점을 올리며 산투스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1998년에도 방한해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을 격려했다. 2002 한일월드컵 조 추첨이 열린 2001년에도 한국 땅을 밟았다. 펠레는 “한국과 일본이 홈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고 강팀을 맞아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2003년엔 국제대회 피스컵의 고문으로 위촉,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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