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경이로운 소문’ 속 카운터들의 짜릿하고 통쾌한 정의 실현 뒤에는 악랄한 악귀들의 몸부림이 있었다. 배우 이홍내는 신선한 마스크로 ‘악(惡)’을 대변했다. 퇴장까지 강렬했던 그의 열연 덕에 시청자의 몰입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달 24일 종영한 ‘경이로운 소문’(이하 ‘경소문’)은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지상의 악귀들을 물리치는 통쾌한 악귀 타파기를 펼치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극 중 이홍내는 악귀의 숙주에서 완전체 악귀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정의로운 카운터들을 절망에 빠트리는 악의 축이었다.

종영 후 서울 모처에서 스포츠월드와 만난 이홍내는 “촬영이 끝나니 후련하고 시원했다. 그런데 16부 방송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라. 상실감도 생기고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경소문’의 흥행을 이끈 시청자를 향해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좋은 연기밖에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소문’은 이홍내에게 말 그대로 ‘경이로운’ 작품이다. 작품이 사랑받을 거란 확신은 있었지만, OCN 최고 시청률 기록은 상상도 못 했던 터다. 그는 “작고 귀여운 친구(소문)를 맨날 때리고 괴롭혀서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따듯한 관심을 보내주셔서 기분 좋았다”고 인사했다.
지난 16회 동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귀 지청신’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이홍내는 인터뷰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득했다. 사납게 보이던 눈매도 눈웃음으로 바뀌었고, 머리카락도 살짝 자라있었다.
극 중 지청신의 트레이드 마크는 삭발한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였다. 따로 준비한 ‘지청신의 강렬한 눈빛’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카운터들에게 밀리지 않는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를 준비했다. 집중하다 보니 자신도 모른 채 ‘그런’ 얼굴이 됐다고 설명했다. 짧은 머리 탓에 고향 친구들도 왜 자꾸 삭발하냐고 묻는다고. 머리스타일에 관한 질문도 많이 받아야 했다.
이홍내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자의로 삭발한 적이 없다”는 것. 2017년 방탄소년단 ‘컴백홈’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삭발을 감행했던 이홍내는 이후 줄곧 삭발해야 했다. 작품에 앞서 항상 ‘머리를 잘라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이 끝나면 항상 머리를 기른다. 그런데 머리를 못 밀어서 작품을 못 하는 건 아쉽지 않나. 삭발이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적다”고 웃어 보이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면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소문’을 시작하며 연출을 맡은 유선동 감독이 이홍내에게 “너와 이 작품을 같이 하면, 지청신이라는 인물을 연기한 너를 사람들이 알아보게 할 거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당시의 솔직한 반응을 물었다.
“속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대답은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무명 배우에 가까운 저를 사람들이 알아보게 해준다는 말이. 너무 감사했지만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저를 많이 알아보게 해주셨어요. 너무 감사드리죠. 꼭 은혜를 갚고 싶어요. 좋은 배우가 돼서 또 한 번 감독님과 작품 하고 싶어요.”
‘경소문’의 흥행으로 이홍내를 알아보는 이들도 부쩍 들었다. 그는 “머리(카락)가 없어서 더 많이 알아보신다. ‘실제로 보니까 굉장히 미남이시다’는 칭찬을 듣고 종일 웃었던 기억이 있다며 “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못 들어봤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댓글 반응도 언급했다. 지청신이 양복을 맞추는 장면을 보고 ‘패션 감각이 전혀 없네, 역시’, ‘빵모자 뭐임, 독립운동가네’라고 달린 댓글이었다. 이홍내는 “의상팀에서 준비해준 옷을 입고 모자도 쓰고 나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독립운동가 단어가 나오더라. 내 눈에 멋있다고 다 멋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다”며 멋쩍게 웃었다. 등장 때마다 시청자의 열띤 반응이 이어졌고, 반응들이 모여 그를 숨 쉬게 했다.
지청신은 악귀의 숙주로 시작해 악귀 완전체로 최후를 맞이했다. ‘경소문’에서 악귀 지청신의 지분도 상당했다. 비중 큰 배역에 부담은 없었을까. 이 같은 물음에 이홍내는 “내겐 ‘경소문’도 전 작품들도 다 똑같은 의미”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지난 수많은 작품을 떠올린 그는 “어깨만 나온 장면, 통편집된 작품들도 있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며 “오히려 지난 시간이 더 생각난다. 그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지청신이 있다. 20대의 나 자신이 생각난다”고 했다.
‘경소문’은 드라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등장과 퇴장이 불분명한 인물을 연기하며 대부분 작품의 기능적 역할을 해왔던 그에게 서사가 주어지고, 배려가 생겼다. 알게 모르게 생긴 불안감이 있었지만, ‘경소문’은 달랐다.
“캐스팅된 순간부터 지청신을 연기하는 절 응원해주고 배려해주셨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다 만들어주신다고 하셨어요.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그래서 촬영이 안 끝나길 바라기도 했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드라마에 대한 부담은 나 자신이 만든 거더라고요. 혼자 덜컥 겁을 먹었던 거죠. 이제 말끔히 해결했어요. ‘경소문’ 덕분이에요.”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데뷔작 영화 ‘지옥화’(2014) 이전에도 수많은 작품을 통해 배우의 길을 다져왔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경소문’을 만났고 ‘잘 버텼다’는 주변의 격려도 이어졌다. 그는 “연기가 아닌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천천히, 평생 할 생각으로 ‘언젠가는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고백했다. 없던 대사가 생기고, 인물의 이름이 생기고, 소속사가 생기고, 오디션의 기회가 생겼다. 그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최근 이홍내가 출연한 작품 속 캐릭터는 대부분 강렬했다. SBS ‘더킹’(2020)의 석호필도, tvN ‘유령을 잡아라’(2019)의 동만도 그랬다. 이홍내는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이유로 꼽으며 “정적일 때는 눈이 날카롭게 보이더라. 사진을 먼저 보고 강렬한 캐릭터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몸 쓰는 걸 선호하지 않았지만, 캐릭터에 맞춰 자연스럽게 취미로 삼게 됐다는 설명도 했다.
“역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 다채로운 역할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제 선한 역할도 해보라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작품 선택의 기준이 선(善)과 악(惡)이고 싶지는 않아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재밌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또 악역이고, 또 삭발일지라도.”
‘경이로운 소문’으로 활기찬 새해 포문을 열었다. 이홍내는 “기가 막힌 영화들을 찍어놨다”고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뜨거운 피’, ‘메이드 인 루프탑’ 등이다. 영화 개봉에 맞춰 관객들과 직접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드라마도 꼭 하고 싶다”며 “또 다른 재미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넓을 홍(弘)’ ‘인내할 내(耐)’, ‘항상 인내하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그는 속뜻을 풀이하며 “항상 인내하고 늘 배려하며 살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배려심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좋은 배우’라는 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싶다.’ 이홍내는 선배 진선규가 말한 이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그는 “속도보단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고 싶다. 그게 30대의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재밌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뭐든 ‘재밌다’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이홍내가 출연하는 작품은 재밌는 작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라는 사람을 재밌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서 모두가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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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엘줄라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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