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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의 눈] 코미디언도 감탄하게 하는 ‘봉 감독 유머’

입력 : 2020-02-16 12:26:13 수정 : 2020-02-16 12: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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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대한민국 영화계에 역사적인 큰 획을 그었다. 이미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와 글이 넘쳐나고 있어 굳이 나까지 칼럼을 써야 하나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한국인의 아카데미 시상 관련 글을 쓸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각을 조금 틀어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가 그의 유머코드에 집중하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소재는 언제나 무겁고 현실 비판적이다.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플란다스의 개’는 생명에 대한 고찰과 인간의 모순을 다뤘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살인의 추억’에서는 연쇄살인범, ‘괴물’에서는 환경문제와 국가 시스템이 잘못됐을 때 소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다. ‘설국열차’에서는 이익을 독점하려 하는 기득권, ‘기생충’에서는 빈부 격차였다. 

 

마냥 무거운 이 소재에 봉준호식 특유의 유머코드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의 유머 감각은 탁월했다. 거창하게 주고받는 대사에서 나오는 인위적인 웃음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웃음이 언제나 포함이 되어 있어 단순하면서 독창적인 코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의 웃음에 항상 의외성이 있다. 가만히 영화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부분에서 포인트를 찾아내고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대한민국이 성범죄 공화국이냐며 날라 차기를 하는 형사에게서 그 모습을 봤고, ‘괴물’에서는 너무도 슬프고 괴로워야 할 장례식에서 온 가족이 나뒹굴며 갑작스러운 웃음을 던져준다. 물론 뒤쪽에선 아무렇지 않게 방역을 하는 모습을 보고도 웃었다. 가장 진지한 순간이 가장 웃기기 쉬운 순간이라고 했던가. 영화를 볼 때마다 웃기는 포인트를 병적으로 찾아내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는 나도 정확한 포인트를 찾기 어려웠다.

 

명대사와 유행어도 기존 공식과는 다르다. 억지로 끼워 맞추어 이상한 억양을 삽입해 만든 유행어만큼 유행어가 안 되는 것도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유행어가 된 명대사는 그야말로 물처럼 자연스럽다. 마치 노자와 장자 스타일의 대사라고나 할까. 특별한 억양을 주지도 않는다. 자연적으로 현실에 녹아든 대사였고 배우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대사들이 유행어가 됐다. 그 말 들은 현실에서 쓰기가 쉬웠고 묘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유머 센스와 감각은 수상 소감과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는 국제적인 영화제가 아닌 매우 로컬한(지역적인) 축제다”라고 했다. 닭살이 돋았다. 근래에 본 풍자 중에 이렇게 뼈를 부수어 버리는 말이 있었던가. 결국 이 말은 “응. 너네 꺼 안 받아도 돼 어차피 너네끼리 나누어 가질 거 아니야”라는 뜻 아닌가. 아부할 시기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용기가 대단하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유머센스를 사랑한다. 풍자와 웃음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이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있다. 나에게 문화 대통령은 봉준호 감독이며 난 문화 9급 공무원이라도 돼야겠다.

 

개그맨 황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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