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서형은 마치 갓 데뷔한 신인같다. 자신이 맡은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자신의 캐릭터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또 충분히 어느 정도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김서형은 자신을 낮출 줄 알며,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는 참된 연기자의 모습도 갖췄다. 그런 그녀가 대박 사건을 냈다. 영화 ‘봄’으로 마드리드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금의환향’을 한 것.
영화 ‘봄’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최고의 조각가와 끝까지 삶의 의지를 찾아주려던 그의 아내, 가난과 폭력 아래 삶의 희망을 놓았다가 누드모델 제의를 받는 한 여인에게 찾아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극중 김서형은 아내 정숙 역을 맡아,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깊은 감정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영화 ‘봄’에서는 이유영이 맡은 민경 역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유영은 극의 중심에 서있고, 노출연기도 불사해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 게다가 박용우, 이유영에 비해 김서형은 등장하는 장면도 적고, 대사도 많지 않아 사실상 조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마드리드국제영화제는 이유영이 아닌 김서형을 선택했다. 또 김서형의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과 열연에 큰 박수를 보냈다. 언어를 초월한, 영화적 언어를 온몸으로 소화했기에, 김서형의 수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김서형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다.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거쳐 공포영화 ‘여고괴담4’, ‘어느날 갑자기’, ‘검은 집’이 보였다. 2008년에는 화제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2년 뒤인 2010년에는 드라마 ‘자이언트’가, 2013년에는 ‘기황후’가 있었다. 그러면서 김서형은 영화도 틈틈히 출연했다. 2012년 작품인 ‘웨딩 세리모니’, ‘베를린’에 이어 2013년엔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프로젝트인 ‘번개와 춤을’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중이 생각하는 ‘배우 김서형’은 드센 악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늘 그랬듯이 목청껏 소리를 쳐야 하고, 기(氣)가 센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이상한 편견이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다른 캐릭터를 맡아도 언론과 대중들은 늘 그녀를 과거 ‘아내의 유혹’과의 연장선에 올려 놓았다. 이보다 더 억울한 상황이 또 있을까.
“사실 배우로서, 또 배우이기 때문에 죽을 듯이 연기에 온 힘을 다했어요. 하지만 끝나고 돌아오는 평가들은 너무 가혹했죠. 더 무서운 건, 편견 때문에 제가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거란 거예요. 저는 언제든 새롭게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유독 제게 엄한 잣대를 적용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남몰래 울기도 참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이젠 울지 않을 거예요. 더 열심히 덤벼야죠. 그래서 편견을 이겨낼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연기하고 싶어요.”

“어느덧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됐어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란 작품을 통해 연기의 ‘연’자를 알게 됐고, 그 후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이제 40대가 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 살을 더 먹는 게 기대가 돼요. 어떤 작품을 만날지 저부터 기대되고요, 또 제가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도 궁금하고요. 제 생애 ‘봄’이 언제냐고요? 매번 답이 바뀌는데, 지금은 촬영장에 있을 때가 제겐 봄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다양한 촬영장에서 진정한 ‘봄’을 만끽하고 싶어요.”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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