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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이해준 감독 "나의 독재자, 러닝타임 길어야 하는 영화"

입력 : 2014-11-14 21:03:32 수정 : 2014-11-14 2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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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로 남다른 이야기를 펼쳤던 이해준 감독이 ‘나의 독재자’로 돌아왔다.

‘나의 독재자’는 대한민국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앞둔 1970년대, 회담의 리허설을 위한 독재자 김일성의 대역으로 선택된 무명 연극배우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새롭고 신선한 설정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나의 독재자’는 최고의 흥행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의 첫 부자(父子) 호흡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이해준 감독은 굉장히 진지했다. 그리고 생각도 많았다. 그러다가 영화 이야기로 진지하게 빠져들 땐 눈빛이 달라졌다. 그만큼 영화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해답을 준 건 아니다. 조금은 생각할 여지를 남기며, 여백의 미를 보여줬다. 감독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나의 독재자’는 영화 곳곳에 여백을 심어놨다. 공백이 아니다. 생각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래서 더욱 많은 생각을, 또 더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한 남다른 배려로, ‘나의 독재자’를 빛나게 만든 장본인인 셈이다.



▲‘나의 독재자’의 구성이 독특하다. 연극식 구성을 어떻게 채택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의 독재자’란 작품이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오랫동안 고민해보니, 연극식 구성이 가장 효과적이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구성을 택하게 됐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뤘던데.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집에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젊었던 아버지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때의 젊고 생생한 아버지를, 무엇이 지금의 아버지로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다. 굉장히 궁금하기도 하고, 또 충격적이기도 했다. ‘나의 독재자’를 준비하면서 그런 점을 많은 생각해봤다. 아들은 평생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못보지 않나. 반면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늙어가는 과정들을 전부 다 보는 데 말이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단절된 부분들, 그리고 어긋난 시간들을 영화로 담고 싶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 아버지? 혹은 아들세대?

“딱히 타겟층을 생각한 건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아시다시피, 나이, 성별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포함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조금은 독특하기도 낯설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해일과 설경구의 투톱이 인상적이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나이차가 크게 나지 않는 두 배우가 아들과 아버지로 나와야하니,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믿음을 갖고 영화를 진행할 수 있었던 건, 국내 최고의 분장감독을 믿었기 때문이다. 분장 감독이 말하길, 박해일은 10년째 늙지 않는 동안이라고 하더라. 반면 설경구는 분장의 힘으로 노년의 아버지를 만들었다. 그 이후는 배우의 몫인데, 누가봐도 그 몫을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설경구를 아버지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배우 설경구가 ‘나의 독재자’ 출연을 결정짓고, 악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느끼길, 그의 손이 굉장히 크고 두툼하더라. 마치 우리 아버지 손 같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손에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그 손이 힌트처럼 느껴졌고, 어느덧 나의 머릿속엔 설경구가 이미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이병준의 캐릭터도 굉장히 맛깔나더라.

“개인적으로 배우 이병준의 엄청난 팬이다. 꼭 한번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분은 그만의 특별한 하드웨어가 있지 않나. 허교수란 인물에 입혀졌을 때, 상상된 게 있었다. 이 역할에 꼭 필요했던 캐릭터였다.”



▲윤제문의 연기도 굉장히 인상깊더라.

“윤제문이란 배우도 꼭 필요했었다. 고문실에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아닌가. 하지만 직접적으로 날뛰면서 폭력적인 면모를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말이 법이고 명령이고… 느긋함 속에서 느껴지는 살벌함이 필요했다. 그런 결을 갖고 있는 배우는 윤제문 밖에 없었다.”



▲박해일은 캐스팅을 염두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인가.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다.

“평소 시나리오를 쓸 때, 캐스팅을 염두하고 쓰는 편은 아니다. 일단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캐릭터에 어떤 배우가 어울릴지 생각하게 된다. 또 배우보단 캐릭터에 더 집중하는 편이기도 하다. 3∼4년 전, 박해일을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자연스럽게 합석을 해서 술을 먹게 됐다. 그때 박해일에 내게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내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더니, 박해일이 ‘나는 뭘 하면 되냐’고 말해 크게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어느샌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태식이 박해일이 되어 있더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박해일이 됐다.”



▲신예 류혜영의 발견도 신선했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류혜영과의 인연은 ‘김씨 표류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류혜영이 고등학생이었는데, 정려원 대역으로 잠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여주인공이 헬맷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장면이었는데, 얼굴이 가려진 상태로 등장하기에 별 문제 없이 작품에 출연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류혜영이란 배우를 알게 됐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신인급의 얼굴이 필요했는데, 마침 류혜영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해서 연락해보니,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더라. 인연이 아닌가 싶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3일 동안 머릿 속에 류혜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화상채팅으로 오디션을 봤고, 그 순간 ‘너다 이것아!’라는 확신이 생겼다.”



▲류혜영의 경우 박해일, 설경구 사이에서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텐데.

“류혜영에겐 불리한 조건에서 해야 하는 게임이었을 것이다. 또 영화가 설경구로 시작해 박해일로 바뀌다보니, 영화의 흐름에 녹아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해일, 설경구 두 배우는 인지도가 있는 배우라 관객들에게 금방 흡수되는데, 아직 신인배우인 류혜영의 경우 자신의 캐릭터를 설득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꿋꿋히 잘 해내더라. 류혜영의 경우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착착 감기는 목소리도 돋보이고, 또 기라성 같은 배우에서 견뎌낼 만큼 에너지가 상당한 배우다.”



▲이번 영화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인 것 같다.

“그렇다. ‘나의 독재자’는 배우들이 중요한 영화다. 배우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야하기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배우들이 가장 잘 보였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맞는 배우들이 필요했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빛나는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바랬다.”



▲영화엔 다소 민감한 정치상황도 등장하던데.

“영화는 분명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이 놓여진 시대와 상황들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건 다소 무리라고 판단했다. 특히 70년대의 경우 정치가 삶을 좌지우지 할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시대다. 그런 시대를 관통한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정치적 상황이 들어간 것 뿐이다. 특별히 의도한 없다.”



▲‘김씨 표류기’에 이어 ‘나의 독재자’에도 자장면이 나오더라. 자장면을 좋아하나.

“작가나 감독이 작품을 만들 때, 의외로 큰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다. 그저 적당하니깐, 그런 이유에서 선택하게 되는 게 많다. 사실 자장면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음식이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선택을 하게 됐다. ‘김씨 표류기’ 땐… 촬영장에서 자장면을 많이 시켜먹었다. 자장면을 많이 먹으면, 강박적으로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물려서, 자장면은 입에도 안 댄다(웃음).”



▲러닝타임이 살짝 길다는 생각도 들던데.

“오히려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길었으면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이지 않나. 물리적인 체감이 되려면, 영화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긴 러닝타임을 채택했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두 다 중요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물인 것 같다. 사람들이 왜 영화를 볼까를 생각해보면, 극중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와 다른, 혹은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나. 특히 영화에서는 주연과 조연으로 배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중에서도 조연은 비록 스쳐가는 인물이지만, 돌이켜보면 조연도 각자의 삶이 있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연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뤄준다면 분명 관객들이 좋아해줄 거라 생각한다.”



▲끝으로 ‘나의 독재자’가 어떤 영화로 기억됐으면 좋겠나.

“내 아버지를 시작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사람들을 생각하는 계절이 있다면, 내 생각엔 11월이 그 달인 것 같다. 영화를 통해 그동안 소원했을 수도 있는 우리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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