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의 타겟이 된 채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를 쫓는 최정예 특수요원 지동철(공유)의 이야기를 그린 ‘용의자’는 그야말로 ‘액션’이란 단어 하나로 정의되는 영화다. 밀도 높은 격투 액션을 비롯해 숨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살 떨리는 카체이싱까지 할리우드에서도 쉽게 보지 못할 고난이도 액션을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그렇다고 액션만 가득한 건 아니다. 공유로 시작해서 공유로 끝나는 지동철의 드라마도 눈물겹게 그려졌다. 이와 함께 박희순, 조성하, 유다인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과 ‘세븐데이즈’ 이후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원신연 감독이 있었다.
원신연 감독은 7년 동안 쉬지 않았다. 액션영화에 대한 열망으로 7년 간의 세월 동안 칼을 갈고 닦았다. 내용없는 액션영화란 오명을 듣지 않도록 시나리오도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 결과 현재의 ‘용의자’가 나왔다. 한국형 액션영화 ‘용의자’가 나오기까지, 그 뒷이야기를 원신연 감독을 만나 직접 들어봤다.
- 진짜 리얼한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액션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직접 액션영화를 만든다면 후회하지 않을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고뇌, 고민을 오래동안 해왔던 것 같다. ‘용의자’란 작품을 준비하기 위한 액션이 아닌, 감독으로서 쌓아온 하나 하나의 액션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그러던 중 ‘용의자’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았고, 꿈꿔왔던 열망을 이번 작품에서 풀어낼 수 있었다.
카 체이싱 장면이었던 것 같다. 준비부터 촬영까지 4개월 이상 걸렸다. 리얼하게 담기 위해 스태프들이 모두 투입됐고, 안전하면서도 실감나게 담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길었지만, 그 답을 영상에 담아내는 시간은 의외로 오래 안 걸렸던 것 같다.
- 고난도 액션인데도, 대역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대역을 쓰게 되면, (배우 얼굴 때문에) 카메라가 빠지면서 단지 그 상황만을 보여주는 액션이 될 것 같았다. 카메라가 아닌, 직접 눈이 되어서 가장 근접한 상황에서 차량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또 파괴되는 순간을 뜨겁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들이 직접 차에 탈 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항상 현장에서 가슴을 졸였던 것 같다. 민대령(박희순)의 스카이다이빙하는 장면도 굉장히 어려웠다. 실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분들이 뛰어 내리면서 도와줬는데, 그분들의 적극적인 도움 덕에 좋은 장면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군인이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군인’을 직업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분들의 모습을 리얼하고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감정과잉이 아닌, 캐릭터 자체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그 점을 박희순이란 배우가 잘 표현해낸 것 같다. 또 박희순이어서 사실에 가까운 군인을 표현해낸 것 같고, 무기력한 군인이 아닌 능력있고 생각있는 군인의 모습을 잘 연기한 것 같다.
- 캐릭터들이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더라. 주인공 지동철 뿐만 아니라 모두들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영화를 제대로 설계하지 않으면 대중들은 빨리 알아본다. 영화 ‘용의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보조 출연자라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했다. 보통의 한국 영화들은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나는 인물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를 추구한다. 그런 부분이 다른 영화들과 다른 점이다.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설계하다보니,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성을 갖고 있어야 했다. 퍼즐판에 각각 캐릭터들을 내려놨을 때, 퍼즐이 완성이 되는 것처럼 완전체가 됐어야 했다. 그래서 주요 배역들이 기승전결이 있는 각자의 스토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지동철은 분명한 사연이 있는 인물이고, 김실장은 나쁜 일을 꾸미고 있으며, 그를 쫓는 또 한 명의 사람인 민대령은 거친사람 같지만 상식있는 인물이다. ‘용의자’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퍼져 나가면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조의 영화다. 이제는 한국 관객들도 다양한 형태의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고 본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충분히 고민을 해서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것 같다. 액션에도 많은 신경을 썼지만, 영화적 설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자부한다.
그렇다. 주요 인물들에게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들어서 다 알려줬다. 예를 들면, 유다인의 경우 시나리오 들어가기 전까지의 일들에 대해 16장이나 되는 비하인드를 정리해줬다. 기자 일을 어떻게 그만두게 되고, 왜 지동철에 집중하는지… 그런 부분들을 배우들에게 이해시킨 셈이다. 그러다보니 배우들은 과거가 있고, 또 그 과거가 몸에 베어 있는 상태다보니 캐릭터에 몰입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만약 관객들이 원한다면 후속편도 생각하고 있다. 지동철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아니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다른 시각에서 다뤄보던지… 그런 부분에 대해 항상 고민 중이다.
- 만약 ‘용의자’ 후속편이 나온다면 액션도 더 업그레이드되는 건가.
지금보다 더 진일보한 액션영화를 만들 것 같다. ‘용의자’ 후속편을 만든다면 또한번 한국형 액션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정교하고 더 마음에 와닿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 참, 무술감독들이 직접 연기를 했더라. 그래서 더 액션이 실감났던 것 같다.
그동안 액션하는 분들은 액션에만 집중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분들도 연기수업을 받으면서 액션배우로서의 가능성도 열어가고 있다. 액션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항상 고민인 게 있다.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액션연기를 하는 연기자들을 쓸 것인지, 아니면 검증된 액션 전문가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서 쓸 것인지. 답은 당연히 후자다. 그래야 액션도 더 실감나게 나오고, 전문가들이 설 자리도 넓어지고, 아울러 액션 장르가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원진 감독 등 액션부문에서 오래 활동해온 분들을 발탁하고, 캐스팅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그분들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최근 블록버스터들을 중심으로 CG액션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용의자’는 맨몸액션을 고수했다. 혹시 걱정은 없었나.
걱정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다. ‘용의자’가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맨몸, 실감형 액션을 추구하기 때문에 처음에 놀라는 분들도 많았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도 감흥이나 전율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더 노력했다. CG로 액션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것보단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피와 땀 냄새, 숨소리 그리고 고독함 등의 액션을 드라마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배우들이 직접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CG와는 다른 질감, 전보다 더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 액션이 강해서 스토리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용의자’는 액션이 강해서 드라마가 잘 안보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에 집중하면 액션과 드라마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겠지만, 그 반대라면 드라마를 못볼 수도 있을 것 같다.‘용의자’는 설계기간만 1년이 넘는다. 관객들이 봤을 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장면들이 반복돼 그 부분에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또 액션을 너무 강한 시선으로 보면 액션에 지치는 관객들도 있을 거다. 그런 관객들은 조금 더 이야기에 집중해서 본다면 액션과 드라마 모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용의자’는 지동철이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다. 지금의 엔딩 장면은 없어서는 안 될 장면이다. 일각에서는 액션으로 끝나면 더 매력적이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 부분은 감독으로서 동의하기 힘들다. 아무리 액션영화라도 서사가 있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메인 캐릭터의 종착점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엔딩의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엔딩이 지동철이 달려온 이유이자 목표였던 셈이다.
- 끝으로 공유 캐스팅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지동철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구일까 사진을 붙여놨다.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하나 하나 떼기 시작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배우가 공유였다. 공유란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의 진폭이 있다. 단선적이지가 않고, 미묘하면서도 강약이 있는 감정선이 있다. 공유와 함께 촬영하면서 끝까지 ‘No!’라는 생각을 안해봤다. 그냥 지동철 자체였다. 100% 만족한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사진=김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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