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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초대석] 서양화가 이정석, "인체에 대한 탐미적 추구, 회화의 참 맛"

입력 : 2011-05-22 22:43:07 수정 : 2011-05-22 22: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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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누드화는 달인의 경지
누드화속 '행복한 여인들'
내면 자극하는 순수 담아

 

이정석 작가가 도곡동 화실에서 '동행'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양화가 이정석은 여인을 주제로 특유의 화풍을 펼치는 중견작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구 도곡동 그의 화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곡동의 한 건물 3층에 마련된 창작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위에 가득 걸린 여인들의 아름다운 자태 때문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화 속 여인들이 기자의 갑작스런 방문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듯하다.

 화실 벽면 중앙에는 200호 크기의 신작이 놓여 있었다. 작은배에는 가족인 듯한 다섯명의 남녀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다. 붉은 모자, 붉은 원피스의 성숙함이 풍겨오는 여인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박수를 보낸다. 각종 새들이 날고 졸음에 겨운 강아지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이 등장하고 수탉과 백마도 흥겨운 선율에 빠져들고 있다. 

 
'빛의 교향곡'. 10년 전 상경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린 300호 대작으로,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신세계 교향곡’이라는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작가만이 알 일이다. 그는 “10년 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올 당시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했다”며 “서울이라는 신세계를 향하는 순간을 상상해서 나의 가족을 소재로 해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순간 이걸 깨달았어요. 평소에 인물화와 함께 여인의 누드를 많이 그렸는데 이번 ‘신세계 교향곡’ 작품을 하면서 가족을 내 그림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다고 말입니다. 앞으로 ‘신세계 교향곡’ 시리즈를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구입해간 ‘빛의 교향곡’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호남의 토착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을 광주시립미술관이 구입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듯 싶다. 300호 크기의 이 대형작품은 한때 광주시청이 대여해 시청홀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소녀와 여인의 인체를 즐겨 그리는 그의 화풍은 사실적이고 인상주의적이라는 평이다. 인체에 대한 탐미적 추구를 통해 회화의 진정한 맛을 구하겠다는 게 작가의 세계관이다. 

'신세계 교향곡'. 화가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신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최근작이다.
#인물과 배경의 공존…미적 효과 극대화


 그의 작품에는 여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누드의 여인일수도 있고 반라의 여인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에선 한 여인만이 등장한다. 극도로 감정이 절제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한국적 미를 갖춘 행복한 여인’이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설레임과 과거 추억속에 사로잡혀 있는 표정을 담고 있기도 하고 꿈을 찾아 먼길을 떠나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있다. 20대 처녀의 순결한 모습에선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며 세파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대학시절부터 인체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왜 잘 팔리지 않는 누드화만 고집하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죠. 누드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와 함께 해왔어요. 지금까지 해온 화풍을 계속 유지·발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저의 인물화의 특징은 배경에 있어요. 여인의 모습은 섬세하고 생동감이 있게 표현하는 반면 배경은 꽃과 숲 등으로 단순화시키죠.”

 그는 전남대에서 15년 동안 강사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때 가르친 게 주로 누드 실기였다. 누드만큼은 결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실력을 갖춘 그다. 그의 누드의 특징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해 하체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학교수를 지낸 김구산씨는 그의 누드의 특징을 “깨끗한 투명성, 내면의 순수를 자극하는 서정성, 형태의 신선감”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눈 주위는 대부분 엷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작가들은 자기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독특한 나만의 스타일이 필요하죠. 누드 특성상 에로티시즘을 뺄 수는 없잖아요. 누드를 걸어놓기 힘들고 소장하기 어려운 그림으로 생각하는데 편안하게 소장할 수 있는 누드를 그려볼 수는 없을까 노력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눈가에 초록색을 처음 썼죠. 그림을 보는 관람객의 시선이 먼저 얼굴로 가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거예요. 반응이 괜잖아 지금은 이게 제 그림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를 잡았죠.”   

'선녀'. 전래동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린 작품이다.(왼쪽) 꽃바람.
 # "나의 그림은 자연친화적"…진정한 행복 추구


그의 그림은 자연친화적이고 민화적 요소가 강하다. 바다, 하늘, 꽃, 나무, 동물(학·고양이·사슴) 등이 작품의 주요 소재다. ‘선녀’라는 작품은 ‘선녀와 나뭇꾼’ 등 전래동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뭇꾼에게 겨우 잃어버린 옷을 돌려받은 안도감에 젖은 선녀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 보는이를 상상의 바다로 인도한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큰딸의 무운을 담아 그린 ‘동행’ 등 근작들에선 여인과 함께 도라지꽃이 활짝 핀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도라지꽃의 수수함과 다양한 색깔에 반해 도라지꽃은 요즘 그의 작품에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도라지꽃들은 선명하고 강한 색채로 붓질이 돼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평소에 도라지꽃을 좋아했어요. 단순하고 볼품없는 꽃처럼 보여도 꽃색깔이 다양해 작품 소재로 삼은 거죠.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인물의 배경으로 오히려 잘 어울린 것입니다. 도라지꽃은 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하나의 꽃으로도 생각할 수 있죠.”

 그의 화면엔 청색이 주로 사용되고 있는데, 청색은 하늘(양)을 상징한다.  화폭 속 여인(음)은 그 하늘의 기운을 받아 아름다움을 발한다.세상의 원리인 음양의 법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정금희 미술평론가(전남대 교수)는 “작가 이정석은 현실 즉 찰나의 순간에서 얻어진 행복을 제시하는 한편 삶 속의 진정한 행복찾기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결코 잊지 않는다”고 평했다.

 “재료비가 감당 안될 때도 있지만 좋은 그림 그리는 게 목적이어서 재료도 좋은 것만 쓴다”는 그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낄 때 나 역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강민영 전문기자 mykang@sportsworldi.com

 ▲ 이정석은 누구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10회(서울·광주)

 -LA 국제아트페어(2011년 LA컨벤션센터)

 -대동미술상수상작가전(2010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한국구상대제전(2010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중견작가 40인초대전(2009,  2010 강남구청본관4층)

 -대한민국현대인물화가전(2009∼2010 서울아트센터공평갤러리 외)

 -한국누드화12인전(2008 예일화랑)

 -무진회전(2004∼2010 조선일보갤러리 외)

 ▶현 강남미술협회 이사, 전라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광주광역시전 심사위원 역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문화센터 강사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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