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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칼럼]우리말 파생어의 매력

입력 : 2009-03-24 20:43:46 수정 : 2009-03-24 20: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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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국어문법을 가르치고 있는 나는 최근 파생어가 주는 아름다움에 흠씬 빠져 버렸다. 한자와 관련된 파생어도 많지만, 우리말 파생어의 매력에 사로잡힌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그 낱말이 주는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본다.

낱말은 어근(語根)이 하나인 단일어와 둘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해 이뤄진 복합어로 대별된다. 복합어에는 합성어와 파생어가 있는데, 합성어는 어근과 어근이 합쳐서 만들어진 낱말이고, 파생어는 어근에 접사(接辭)가 붙어 만들어진 낱말을 말한다. 다시 파생어는 어근 앞에 접사가 붙으면 접두사, 어근 뒤에 붙으면 접미사라 불리운다.

이 가운데 파생어를 좌지우지하는 건 접사다. 접사는 낱말의 운명을 결정짓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형태소 가운데 하나다. 특히, 접미사는 어근의 품사까지 바꿔버리는 ‘능력’까지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게 접미사 ‘-보.’ 먹보 울보 밥보 술보 떡보 털보 꾀보 악보 심술보 느림보 뚱뚱보. 이렇게 새끼를 치면 수많은 낱말들이 나올 수 있다. 이 중 악보는 고함(악)을 잘 지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방언이다. 신어(新語)를 만들 경우 접사의 이런 기능을 다양하게 활용한다면, 갑자기 새로운 말을 만들려고 머리 싸매며 고민할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강북에 자리한 인문계 고등학교 남학생 문과반 수업시간, 교과서 내용으로 바로 수업에 들어가면 따분하기에 ‘파생어 놀이’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접두사 ‘군-.’ 그 후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쓸데없는’ 또는 ‘덧붙은’이라는 의미를 말하고 군살과 군것질이라는 두 낱말을 칠판에 적자 학생들의 입에서 자연스레 대답이 나온다. 군침, 군불, 군내, 군기침, 군소리, 군손질……. “자, 이 시간에 군소리 할 사람 없으리라 생각하고 수업 들어갑니다.”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존의 접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낱말을 꾸준히 만들어 내면 좋겠다. 특히 위의 악보처럼 각 지역방언을 더 깊이 연구해 보면, 아직까지 대중화되지 못한 접사들도 많을 것이다. 외국어·외래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겠지만, 여태까지 잠에만 빠져 있던 접사를 찾아내 그들이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건 학자들이 몫이리라. 하나의 접사는 수십 개의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줄 것이기에 그렇다.

봄이다. 점심을 몽땅 먹고 졸음이 서서히 올 5교시, 오늘은 ‘개’다. 접두사 ‘개-’가 쓰인 파생어를 말하라고 하면 비속어가 나올 것 같아 접미사 ‘-개’로 바꾸어서 졸음 몰아내기를 시도한다. 학생들이 집중한다. 그들의 입에서 대답이 술술 나온다. 덮개 베개 따개 오줌싸개…. 학생들이 웃는다. 2009년 봄날이 가고 있다.

최홍길 선정고 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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