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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현자 서울대 간 사연은…

입력 : 2008-03-21 11:03:46 수정 : 2008-03-21 11: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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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합격하고도 무대 선택, 2006년 학교로 돌아와…
[스포츠월드] 가수 현자(양미정·43)는 서울대에 다니고 있는 트로트 가수다.

‘트로트 가수와 서울대’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현자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력을 자랑하는 서울대 학생이다. 그것도 20년 만에 중단한 학업을 다시 시작한 만학도. 현자에게는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어 20년 만에 다시 학업을 시작하게 했을까.

일찌감치 가족을 따라 서울로 자리 잡은 현자는 학창시절부터 학업성적이 뛰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손 꼽던 순위를 가졌던 현자는 결국 한성여고 재학 중인 84년도 서울대 가정학과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현자는 학업 대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가세가 기울어지자 그 충격에 부모님이 차례로 병석에 누우셨어요. 그러니 당장 먹고살기 위해선 직업을 가져야 했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아주 절실하게 다가 오더군요.”

그래서 대학을 그만두고 들어간 첫 직장이 서울의 한 백화점.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박봉은 결국 현자를 한 달 만에 다른 직장을 찾도록 만들었다. 그는 무명 영화배우였던 둘째 오빠의 소개로 케임브리지클럽에서 노래를 하게 된다.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뭐든 가릴 처지는 아니었어요. 노래를 취미로 불러봤지,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시작하고 보자는 심보였죠.”

다행히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선천적으로 소질이 있었던 현자는 무대공연을 하면서 빠르게 노래실력을 발전시켰다. 이 같은 라이브 경험은 결실을 맺어 2004년 자신의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하고 이어 2005년 자신의 두 번째 앨범 ‘사랑을 몰랐네‘를 발표하며 꾸준히 인기를 쌓아 갔다.

처음엔 형편만 나아지면 곧 바로 학교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지만, 사실상 가족의 가장노릇을 하는 현자였기에 마음만 있을 뿐 선뜻 행동으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만 먹은 지가 벌써 20년째.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에 현자는 용기를 내서 지난 2006년 학교로 돌아가는 용단을 내렸다.

“학교에 갔더니 교수님께서 ‘결혼해서 애를 키울 나이에 학교는 뭐하러 왔느냐?’라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교수님께서 열심히 꿈을 찾아보라며 입학을 허락하셨답니다.”

재입학 제도를 통해 어렵사리 서울대 아동관리학과 학생이 된 현자.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한 20년 세월동안 학교환경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20세기를 맞아 컴퓨터는 기본으로 다뤄야 했고 영어원서로 진행되는 학교수업은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현자에게 큰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현자는 가수 스케줄을 비우는 한이 있더라도 수업은 빠지지 않는 걸 철칙으로 삼았고, 원서로 하는 수업은 번역본을 같이 보며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이 같은 노력은 결국 평균 평점 3.44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돌아왔다.

현자는 지금도 돈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걱정한다.

“한번은 수업을 듣는데 한 학생이 계속 책을 안 가지고 오는 거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집안 형편상 책을 살 형편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교재를 사준 적이 있답니다. 지금처럼 잘사는 세상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이후, 현자는 학생회와 함께 대규모 콘서트를 계획하게 됐다. 학교 축제 때 콘서트를 열어서 모이는 수익금을 전액 장학금으로 내놓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도였다.

“이왕 시작한 학업 될 수 있으면 대학원까지 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겼으니, 예전에 저 같은 처지에 있는 학생들도 돕고 싶은 마음이고요. 그게 저에게 다시 ‘배움의 기회’를 준 모교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만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현자.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글 황인성 기자, 사진 정경우 기자 enter@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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