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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의 만남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조선 개국을 반대하다 이방원의 부하에게 철퇴를 맞고 죽은 선죽교를 찾은 개성관광객들이 북한 해설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
금강산보다 통관절차가 간소해졌다는 질문에 경의선 북한 출입사무소(CIQ)부터 동행한 북한 명승지 종합개발 지도국 박승남 안내원의 말이다. 이 한마디에 남북관계가 또 한걸음 진전됐다는 것이 느껴진다.
지난해 10월 열렸던 남북정상회담 첫 후속조치로 시작된 개성관광. 북한에서는 자연이 아닌 도시의 문화유적지를 개방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개성관광의 주요 방문지인 선죽교와 숭양서원, 고려박물관, 점심을 먹는 통일관 등이 개성시의 복판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남측 관광객들은 방문지로 이동하는 내내 버스를 타고 개성시내를 돌아보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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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글솜씨 박연폭포를 찾은 관광객들이 용바위 위에 새겨진 황진이가 쓴 글귀를 찾아보고 있다. |
관광지마다 자리한 안내원과 해설사의 옷차림도 금강산에 비해 훨씬 세련됐다. 금강산 개방 초기 북한 주민들과 일체의 접촉을 금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남측 관광객에게는 박연폭포나 선죽교보다 개성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 인상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북측의 기대감도 높았다. 개성관광 내내 동행한 북측 안내원은 올해는 남북관광이 한 단계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내원은 “봄이 되면 백두산 시범관광이 시작되고, 금강산도 마지막 남은 비로봉을 개방한다”며 “이제 남측 손님들은 어느 곳을 갈까 고민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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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사세요 고려박물관 입구에 있는 조선우표전시관 종업원들이 관광을 마친 남한 관광객들에게 우표를 팔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할머니는 큰아들이 개성관광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며 어릴 적 보았던 개성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소학교 다닐 때 박연폭포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시내에서 박연폭포까지는 70리 길이라 꼬박 하루가 걸렸죠. 저녁에 도착해 관음사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박연폭포를 본 뒤 개성으로 돌아오면 다시 저녁이 됐죠. 그때나 지금 이 폭포는 변한 게 없는데, 사람만 이렇게 늙었네요.”
이옥인 할머니는 개성 시내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살았던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시는 못 올 줄 알았던 개성 땅을 밟아본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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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 꿈틀 박연폭포 입구에 있는 매점에서 차와 음료, 군것질 거리를 파는 종업원이 환하게 웃고 있다. 포장이 허술한 과자나 빵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
외국인들이 개성관광에 나선 것은 남북한 교차관광에 대한 기대감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국관광공사 심정보 홍보실장은 “개성이나 금강산, 백두산 관광이 전면 실시되면 외국인들에게 남북한을 연계한 관광상품이 새롭게 주목을 받을 것”이라며 “외국인들이 서울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면 남측과 북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전 7시 경의선 남측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수속과 함께 시작된 개성관광은 오후 4시55분 군사분계선을 지나 다시 남한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불과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이 길이 열리는데 60여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개성=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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